
강진, 전남..
2007.09.15. 박군서 촬영
유홍준 선생은 유적을 보는 것중에 으뜸은 절터와 같이 복원되지 않은 곳을 찾는 것이 으뜸이라고 한다. 섣불리 잘못 복원된 문화재를 보는 것보다 절터를 보면서 당시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이 멋진 일이라는 것이다.
월남사는 고려 중기에 진각국사(眞覺國師碑)에 의해 창건된 사찰로, 창건 이후의 기록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진각국사의 성은 최씨이고 이름은 혜심(慧諶)으로 24세에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어머니의 죽음이 계기가 되어 출가를 하게 되었다. 출가 후 보조선사 밑에서 수도를 하였고 고종이 왕위에 오르게 되자 대선사(大禪師)가 되었으며, 고종 21년(1234)에 57세로 입적하였다. 월남사 터에 서 있는 비는 절을 창건한 진각국사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1988년 전라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월남사의 창건을 밝힐 수 있는 확실한 문헌은 전하지 않으나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고려승 진각초창 유이규보비(高麗僧眞覺初創有李奎報碑)’라 하여 송광사 제2세인 진각국사(眞覺國師)가 창건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으로 보면 월남사는 고려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조선시대 임진·정유왜란을 겪으면서 소실되고 그 뒤 복원불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17세기 중반 이미 폐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월출산 남쪽 평지에 위치한 월남사지에는 현재 마을이 형성되어 민가들이 들어서 있으며, 건물터로 보이는 기단부와 초석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절터 안의 백제계 모전석탑(模塼石塔)은 법당터의 전면으로 추정되는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또 최근에 현 모전석탑 서측(向左)의 민가 장독대에서 석탑의 옥개석이 발견되었는데, 현 석탑의 주변에서 수습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볼 때 월남사지에는 원래 2기의 석탑이 있었던 것 같다.
현 모전석탑에서 약 150m 떨어진 곳에 월남사지석비가 있다. 이 비는 이규보가 비문을 지은 진각국사비로, 현재 비신 일부가 완전히 떨어져나간 상태이나 기단부의 귀부(龜趺)는 완전하게 남아 있다.
월남사지의 전체 규모는 상당한 면적을 차지하였던 것 같다. 현재 외곽 담장의 흔적이 잘 남아 있는데 동서방향인 전면의 길이가 175m, 남북방향인 측면의 길이가 185m로서 총면적은 1만여평에 달하고 있다.
가람배치 형식은 전체적으로 보아 완만한 경사지를 4개의 단으로 만들고 그 단부에 축대를 쌓아 점차적으로 오르면서 각각의 단에 평평한 대지를 조성하여 건물들을 배치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좌우측으로도 5개의 단을 두어 각각의 단에 대지를 조성한 것으로 보이는데 다만 축선은 대웅전을 중심으로 한 건물과 다르게 배치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월남사지에서 수습된 유물은 기와류와 자기류뿐이다. 그중 기와류는 문양·태토(胎土)·소성도 등으로 미루어 통일신라 말에서 조선시대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통일신라와 조선시대의 유물은 극소수이고 고려시대의 유물이 주를 이룬다. 자기류도 완·접시·병·대접 등 다양하게 수습되었는데, 모두 고려시대의 유물들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월남사지(月南寺址)는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월남리에 있는 고려시대 사찰 터이다. 이름 그대로 “월출산 남쪽에 있는 절”이라는 뜻을 지니며, 고려 후기 선종 계열의 중요한 사찰로 알려져 있다.
특히 이곳은 조선 초기 불교사와 선종 문화의 흐름을 보여주는 유적으로 평가받는다. 현재는 절 건물 대부분이 사라지고 터만 남아 있지만, 남아 있는 석조 유물과 터의 배치에서 당시의 규모와 품격을 짐작할 수 있다.
대표적인 문화재는 다음과 같다.
- 고려 후기의 우아한 비례를 보여주는 삼층석탑
- 고승의 행적을 기록한 진각국사비 : 비는 거북받침돌 위에 비몸을 올린 형태이다. 받침돌인 거북은 입에 구슬을 문 상태로 긴 목을 빼어들고 네 발을 단단히 짚고 있는데, 그 모습이 매우 강렬하고 사실적이다. 발톱에서 보이는 현실성이나 목과 머리조각의 세부표현 또한 전체적인 균형과 잘 어우러져 한층 돋보인다. 비몸은 원래 매우 컸다고 하나 윗부분이 떨어져 나가고 아랫부분만 남아 있으며, 표면이 심하게 마모되어 비문은 잘 보이지 않는다. 비문은 당시의 문장가인 이규보가 지은 것으로 전해지며, 비를 세운 시기는 고려 고종 때로 추정된다.

진각국사비
- 자연 지형과 어우러진 절터의 아름다운 배치
월출산 자락의 고요한 풍경 속에 자리하고 있어, 폐사지 특유의 적막함과 사색의 분위기가 깊게 느껴지는 곳입니다. 봄에는 녹음과 들꽃, 가을에는 억새와 단풍이 어우러져 매우 아름답다.
미학적으로 보면 월남사지는 “사라짐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공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화려한 전각은 없어졌지만, 남겨진 돌과 터, 산의 흐름 속에서 오히려 시간의 침묵과 불교적 공(空)의 정서를 강하게 느끼게 합니다. 이는 완전한 건축보다 폐허가 더 깊은 상상력과 명상을 불러일으킨다는 동아시아 미학과도 연결됩니다.
▶▶진각국사 혜심
진각국사 혜심은 고려 중기의 고승(高僧)으로, 보조국사 의 법통을 이은 대표적인 선승(禪僧)입니다. 속명은 최심(崔諶)이며, 1178년에 태어나 1234년에 입적하였습니다.
그는 특히 선(禪) 사상의 기틀을 다지는 데 큰 역할을 하였고, 스승 지눌이 세운 를 중심으로 수행과 교학을 발전시켰습니다.
주요 특징
1. 유불(儒佛) 융합의 인물
혜심은 원래 유학을 공부하던 선비였습니다. 과거 공부를 하다가 불교에 귀의하였기 때문에, 그의 글에는 유학적 품격과 선불교의 깊이가 함께 나타납니다. 고려 지성사에서 “문사(文士) 출신 선승”의 전형으로 평가됩니다.
2. 간화선 발전
스승 지눌이 정리한 “돈오점수(頓悟漸修)” 사상을 계승하면서도, 화두를 통해 깨달음에 이르는 “간화선(看話禪)” 수행을 적극 발전시켰습니다. 이후 한국 선불교의 중요한 흐름이 되었습니다.
3. 『선문염송집』
혜심의 대표 저술은 『선문염송집(禪門拈頌集)』입니다. 선종의 공안과 조사들의 말을 모아 해설한 책으로, 동아시아 선불교 문헌 가운데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문화사적 의미
진각국사는 단순한 수행승이 아니라, 고려 불교의 정신세계를 문학과 철학으로 정리한 사상가였습니다. 그의 문장은 맑고 절제되어 있으며, 수행자의 고요함과 학자의 깊이를 함께 보여줍니다.
특히 월남사는 지눌과 혜심의 법맥이 이어진 공간으로, 한국 선불교의 중요한 성지로 평가받습니다.
미학적으로 본 진각국사
혜심의 사상에는 “비움 속의 충만”이라는 동아시아 미학이 스며 있습니다.
그의 선시는 자연을 단순히 묘사하지 않고, 자연 속에서 마음의 본성을 비추어 봅니다. 그래서 매화, 달빛, 산중의 물소리 같은 이미지가 단순 풍경이 아니라 깨달음의 상징으로 읽히곤 합니다.
이는 후대의 한국 선시(禪詩)와 문인화 정신에도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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