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雪舟 송운회, 제갈량 시- 김상윤 그림이야기

ART GARDEN 2026. 4. 13. 10:59

雪舟 어르신이 제갈량의 시를 썼군요.

81세 필력이 대단하십니다

아마 92세까지 사셨을 겁니다.

설주 선생의 87세 작품 조행엄정(자기 절제가 강하고, 행동이 매우 올곧은 인품)

설주 암년이라고 써 있습니다. 단단한 해. 독특하고 깊이가 있습니다.

팔십 유 칠이라고 쓴 것도 특이합니다.

광주 사회복지법인 동명 김오현 선생에게 설주선생이 주신 것입니다.

격식을 갖추어 증정한 것입니다.

현재 아드님인 김성윤 소장

 

설주 86세 작품 삼호당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김진성 교수의 당호 三乎堂

김진성 소장

 

설주 송운회(1874-1965)

[ 宋運會 ]

 

근대기에 활동한 서예가이다. 자는 세경(世卿), 호는 설주(雪舟) · 빙설(氷雪) · 설주노인(雪舟老人) · 설인(雪人) · 노설(老雪) · 설옹(雪翁) 등을 사용했으며, 본명은 진회(震會)이다. 본관은 여산(礪山)이다. 부친은 송수면(宋秀勉)이며, 모친은 남원윤씨(南原尹氏)로 1874년 전남 보성군 율어면 금천리에서 5남1녀 중 2남으로 태어났다. 형은 시문으로 유명한 송명회(宋明會)이다.

호접도(蝴蝶圖)와 사군자로 유명한 송수면(宋修勉)과는 한 집안이며, 5세 때부터 형 송명회와 함께 통정대부를 지낸 조부 송후만(宋厚萬)에게 한학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18세 되던 해에 한말의 대 문장가로 척양척왜(斥洋斥倭)를 주장하다 1892년에 전남 보성으로 두 번째 귀양을 왔던 이건창(李建昌)에게 경서와 서예를 배웠다. 이건창과의 인연은 그의 해배(解配) 이후에도 이어져 이건창이 고향 강화에 돌아간 후에도 찾아가고, 이건창의 동생 이건방(李建芳)과도 평생지기로 지냈다. 뿐만 아니라 당시 전라남도에서 활동하던 허소(許炤) · 안규용(安圭容) 등 문인 예술가들과 두루 교유하였다.

송운회는 중국과 우리나라 명인들의 필법을 두루 섭렵하는 한편 명대 서예가 동기창(董其昌)의 필법에 심취하였다. 5체에 모두 능했으나 주로 해서 · 행서 · 초서를 썼으며 그의 진초(眞草)는 "선(仙)의 경지에 이른 신필(神筆)"이라는 평을 받았다. 또한 광복 전의 조선미술전람회, 그 후의 국전 등에서 작품을 인정받을 기회가 많았지만 자존심과 강직한 성품으로 야인으로 남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선비로 알려졌다. 글씨 외에는 전혀 한눈을 팔지 않았으며, 1965년 임종 때까지도 붓으로 예도(藝道)를 실천했던 '탈속웅필(脫俗雄筆)'의 서예가라고 칭해진다.

유작으로는 타계하기 전날 쓴 예서 <일심(一心)>을 비롯한 수많은 작품이 전한다. 뿐만 아니라 송운회가 개발한 서체이론을 담은 법첩과 유묵집으로 《설인금강첩(雪人金剛帖)》, 《빙설첩(氷雪帖)》1~9권, 《상고첩(尙古帖)》, 《임고첩(臨古帖)》, 《설주진적(雪舟眞蹟)》, 《아양묵운(峨洋墨韻)》, 《자양서독(紫陽書牘)》 외 다수가 전한다. 서예작품 이외에도 금강산 유람기인 『유금강산(遊金剛山)』, 시집 『설주유고(雪舟遺稿)』 등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송운회 [宋運會] (한국 역대 서화가 사전, 2011. 1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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