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석현 박은용: 검은 고독, 푸른 영혼- 김상윤의 그림이야기

ART GARDEN 2026. 4. 19. 15:47

[김상윤] 나에게도 석현 박은용의 명품이 몇 점 있지요.

[이계표] 그러실 것으로 짐작했어요. 석현의 어려운 형편을 돕고자 하는 친구들이 계모임을 하기도 했어요

[김상윤] 맞아요.

[김상윤] 사평이던가, 석현화실에 자주 놀러 다녔지요.

그림을 여러 장 주문해서 선물용으로도 많이 썼어요.

'파장'이라는 작품은 1990년대에 80만 원이라는 거금을 주고 직접 작가에게 의뢰하여 구입했었지요.

전지 크기이니 40호 정도의 작품인데, 지금 봐도 명품입니다.

자화상

이 자화상이 훨씬 실물에 가까워 보입니다.

[김상윤] 내 소장품입니다. 명품 중의 명품입니다.

[이계표] 궁금했는데, 얼른 찾으셨네요. 감사드립니다

비 오는 날

파장

그런데 작품 상단 우측에 있는 소를 화면 맨 앞에 그리고, 그 뒤에 주점에서 술을 마시는 사내가 있는 그림이 '파장'이라는 그림이지요.

완전히 먹만으로 그려졌습니다.

아마 대학 다니는 자식 등록금을 내려고 소를 사평장에 팔려고 왔으나, 소를 팔지도 못하고 홧김에 주막에서 막걸리잔을 기울이는 모습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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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론 박은용: 존재의 어둠을 통과한 영혼의 색채

석현 박은용의 「검은 고독 푸른 영혼」 연작과 「파장」, 「비오는 날」, 자화상에 이르는 일련의 작품들은 한 개인의 궁핍한 생애를 넘어, 한국 현대 수묵의 정신적 지층을 드러내는 깊은 미학적 사건이라 할 수 있다. 그의 그림은 단순히 먹으로 그린 현실 묘사가 아니라, 존재의 어둠을 통과한 영혼의 색채를 보여주는 수행의 기록이다.

1. 먹의 존재론 ― 검은 색의 깊이

석현의 화면은 거의 전면이 먹이다. 그러나 그 먹은 단순한 색채가 아니라, 시간과 체념과 기도의 농도다. 완전히 먹만으로 그렸다는 「파장」의 경우, 먹의 농담은 곧 삶의 온도와 같다. 짙은 먹은 응결된 고통이며, 번져 나가는 여백은 아직 꺼지지 않은 숨결이다.

이 지점에서 석현의 수묵은 전통 문인화의 유연한 운필과는 결을 달리한다. 그는 자연을 노래하기보다, 인간의 사정을 증언한다. 이는 조선 문인화의 관조적 정신보다는, 1980–90년대 민중미술의 현실 인식과 맞닿는다. 실제로 5·18 40주년 기념전이 열렸던 은암미술관의 전시 맥락 속에서도 보이듯, 당대 화가들은 시대의 그늘을 품고 있었다. 석현의 먹빛 역시 그 시대의 어둠을 침전시킨다.

2. 「파장」 ― 소와 사내의 이중 구도

「파장」은 화면 전면에 놓인 소, 그리고 뒤편 주막에서 막걸리를 기울이는 사내라는 이중 구도를 지닌다. 소는 생계이자 희망이며, 동시에 팔려나가야 할 생명의 짐이다. 사내는 그것을 팔지 못한 채, 주점에서 술잔을 기울인다.

이 구성은 극적이다. 화면 앞의 소는 침묵한다. 뒤편의 사내는 체념한다. 먹으로만 처리된 이 장면은 색채의 유혹을 제거함으로써 오히려 서사의 밀도를 높인다.

여기서 검은 고독은 단순한 정서가 아니다. 그것은 한국 농민의 구조적 운명이며, 아버지라는 이름의 책임이다. 자식의 등록금을 위해 소를 팔러 왔다는 서사는 단지 개인적 일화가 아니라, 산업화 이후 농촌이 겪은 역사적 단면을 환기한다.

검은 화면 속에서 사내는 작아지고, 소는 묵직하게 자리한다. 인간보다 더 무거운 존재가 화면을 지배한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인간 중심적 세계관을 넘어선다. 그것은 삶을 떠받치는 존재들에 대한 묵시록적 경의다.

3. 「비오는 날」 ― 우울의 서정

「비오는 날」은 보다 서정적이다. 비는 씻어냄과 침잠을 동시에 상징한다. 빗줄기 속 인물은 고독하지만, 그 고독은 절망이라기보다 사색의 깊이에 가깝다.

먹의 번짐은 빗물과 호응하며, 화면 전체를 부드럽게 감싼다. 여기서 검은 색은 단단한 절망이 아니라 젖은 숨결이다. 「파장」이 서사의 그림이라면, 「비오는 날」은 정조의 그림이다.

4. 자화상 ― 실물에 가까운 얼굴

자화상에서 우리는 가장 정직한 석현을 만난다. 실물에 가까워 보인다는 평처럼, 이 초상은 이상화되지 않았다. 날것의 표정, 깊게 팬 눈가, 절제된 필치.

여기서 ‘푸른 영혼’은 색채가 아니라 눈빛에 있다. 화면은 여전히 어둡지만, 인물의 시선은 푸르다. 그것은 절망을 통과한 사람만이 지닐 수 있는 내면의 투명성이다.

5. 검은 고독, 푸른 영혼 ― 대비의 미학

석현 회화의 핵심은 대비다.

  • 검은 화면과 푸른 정신
  • 침묵하는 소와 술을 마시는 인간
  • 가난한 현실과 고결한 시선

이 대비는 단순한 형식적 장치가 아니라 윤리적 태도다. 그는 비참을 미화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을 외면하지도 않는다. 먹으로 끝까지 밀고 나간 화면은, 오히려 영혼의 색을 더욱 또렷하게 드러낸다.

검음이 깊을수록 푸름은 선명해진다. 어둠이 깊을수록 별빛은 또렷해진다. 이 역설이 바로 「검은 고독 푸른 영혼」의 미학이다.

6. 소장과 증언의 의미

김상윤 선생이 작품을 소장하며 어려운 시절 작가를 도왔다는 일화는, 단순한 후원담이 아니다. 그것은 한 시대 예술을 지켜낸 연대의 기록이다.

1990년대에 80만 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직접 의뢰했다는 사실은, 작품의 경제적 가치보다 정신적 가치를 증언한다. 예술은 시장에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 관계 속에서 살아남는다.

맺음말

석현 박은용의 그림은 화려하지 않다. 그러나 오래 남는다.

그의 먹빛은 침묵의 언어이며, 가난한 시대의 기록이며, 동시에 한 인간의 푸른 영혼에 대한 증언이다.

「파장」에서 술잔을 들고 있는 사내는 패배자가 아니다. 그는 아직 소를 팔지 못한 사람이다. 아직 끝나지 않은 사람이다.

그렇기에 그의 화면은 절망이 아니라 유예(猶豫)의 공간이며, 어둠 속에서 끝내 꺼지지 않는 푸른 숨결의 자리이다.

석현의 검은 고독은 곧 우리 시대의 초상이며, 그 속에서 푸르게 살아 있는 영혼이야말로 그의 예술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깊은 유산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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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윤의 그림이야기> 목록

(1-41) 中正 김상윤 선생님 봄정원 풍경(4. 13, 담양) - “나이 든다는 것은 시드는 것이 아니라 향기가 깊어지는 일”

https://blog.naver.com/wtcho2/224252789703

심산 김창숙 沁山 金昌淑 선생의 온고지신 溫故知新

https://blog.naver.com/wtcho2/223980910126

50년 동안 흔들리며 배운 세상- 나의 소박한 운동사/ 김상윤

https://blog.naver.com/wtcho2/224125029519

▶김상윤 소장품전 5·18 40주년 ‘민중畵, 민주花’전

은암미술관, 2020년

“시대와 호흡하는 작품… 울림 오래갔으면”

김상윤 ‘윤상원기념사업회’ 고문 소장품 전시

1981~2000년 민중미술작가 18명 작품 25점

송필용·한희원·하성흡 등 포함

http://kwangju.co.kr/article.php?aid=1586790000693563007

☎ 이메일 김상윤 sykim491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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