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소설

필요 없다, 침묵, 말을 걸지 말아다오, 우리만이 아니다 & 비평- 조원탁 제6시집 혀Lingua에서

ART GARDEN 2025. 12. 17. 06:37

필요 없다

 

범죄, 사기, 갈등이 없으면

검사, 판사, 변호사가 필요 없다.

 

질병이 없으면

의사가 필요 없다.

 

슬픔이 없으면

예술가가 필요 없다.

 

죽음이 없으면

종교가 필요 없다.

 

고독하지 않으면

사랑이 필요 없다.

 

말이 필요 없다.

혼자 살 수 있다면.

침묵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받지 않는다.

3번 해도 받지 않는다.

 

며칠 후에 멧시지가 왔다.

‘절에 들어와 있어

통화를 할 수 없습니다‘

 

나이 70에

가족도 있는데

절이라니.

 

몇 달이 지나도

소식이 없다.

전화도 받지 않는다.

친구의 웃는 얼굴만 떠오른다.

말을 걸지 말아다오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 2악장에 부쳐

 

오르페우스여

죽은 너의 연인을 지옥에서 데려오려고 하지 마라

혹시 되살린다면 뒤를 돌아보지 마라.

 

그것은

바람을 손으로 잡아 새장에 넣으려고 하는 것.

바닷물을 눈으로 잡아 그릇에 담으려 하는 것.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용서의 그릇에 담으려 하는 것.

 

오케스트라여,

나에게 말을 걸지 말아다오.

 

나는 귀먹은 노인.

쓸쓸함도 회한도 잊어버린 고슴도치.

 

눈을 감은 채 아무 생각도 없다.

바람처럼 물처럼.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나를 들여다보기에도

지쳤다.

 

*오르페우스 Orpheus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음유시인, 리라(작은 하프 현악기)의 명수이다. 그의 노래와 리라 연주는 초목과 짐승들까지도 감동시켰다고 한다. 서양에서 예술가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신화적인 인물이다. 사랑하는 아내 에우리디케가 뱀에 물려 죽자 저승까지 내려가 음악으로 저승의 신들을 감동시켜 다시 지상으로 데려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냈다. 그러나 지상의 빛을 보기까지 절대로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경고를 지키지 못해 결국 아내를 데려오지 못하고 슬픔에 잠겨 지내다 비참한 죽음을 맞았다.

 

* 리라를 들고 비탄하는 오르페우스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4번 론도 카덴차, 임윤찬 

https://www.youtube.com/shorts/lGFJHA_a8SQ?feature=share

 

 

 

Yunchan Lim 임윤찬 Myung Whun Chung & Munich Phil Beethoven Piano Concerto No.4 Op.58 ARKSOUNDTEK 2023

https://youtu.be/7uwO2_5bU40?list=RD7uwO2_5bU40

 

 

우리만이 아니다

 

미국에서 150년전

남북지역간에 전쟁이 일어나

몇 십만명이 죽었다.

이웃들이었다.

 

프랑스에서도 200년전

혁명이 일어나

몇 십만명이 죽었다.

 

중국에서도 러시아에서도 일본에서도

이스라엘에서도 아라비아에서도

인도에서도

서로 잘 알고 만나는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 몇 십만 몇 백만명이 죽었다.

 

70년전 한국에서도

서로 잘 아는 사이에 싸움이 일어나

몇 십만명이 죽었다.

 

우리만이 아니다.

변명하는 것이 아니다.

합리화하는 것도 아니다.

 

사람사는 곳에서

끊임없이 싸우고

나아가는 일이 그치지 않았다.

 

살면서 싸우고

죽어가는 일이

사람사는 집단에서 비슷하게 일어난다.

지금도

바로 지금도

한 번도 멈춘 적이 없다.

이 지구상에서 전쟁이 멈춘 적이 있는가?

하루라도.

▶오늘 4편의 시에 대한 비평

 

네 편은 하나의 연작처럼 읽힌다.

결핍·침묵·비가역성·집단적 폭력이라는 축을 따라 점점 시야를 확장한다.

개인의 내면에서 출발해 신화와 음악을 경유하고, 끝내 인류사의 반복으로 나아간다.

이 구성은 이 네 편의 시를 단순한 서정이 아니라 윤리적 사유의 장으로 끌어올린다.

 

1. 「필요 없다」 — 결핍으로 정의되는 문명 비판

이 시는 역설의 논리로 시작한다.

검사·의사·예술가·종교·사랑은 모두 부정적 상태의 산물로 제시된다. 범죄, 질병, 슬픔, 죽음, 고독이 사라질 때 그 제도와 감정 역시 불필요해진다는 선언은, 문명이 스스로의 상처 위에 세워졌음을 냉정하게 드러낸다.

특히 “슬픔이 없으면 / 예술가가 필요 없다”는 구절은 예술의 기원을 위로가 아닌 상처의 부산물로 규정한다. 이는 예술을 숭고화하지 않고, 오히려 인간 조건의 불완전성에 단단히 묶어두는 태도이다.

마지막의 “말이 필요 없다 / 혼자 살 수 있다면”은 인간 사회 자체에 대한 근본적 회의로 귀결되며, 이 연작 전체를 반(反)휴머니즘적 성찰의 지점에 놓는다.

 

2. 「침묵」 — 단절의 윤리, 선택된 고독

이 시에서 침묵은 감정의 공백이 아니라 능동적 선택입니다.

전화 세 번, 응답 없음, 그리고 “절에 들어와 있다”는 짧은 메시지. 이 간결한 서사는 설명을 거부한 채 독자를 윤리적 곤혹 속에 남긴다. 나이, 가족, 사회적 역할을 모두 가진 인물이 돌연 선택한 침묵은 이해되기보다 존중되어야 할 타자의 결정으로 남는다.

중요한 것은 화자가 그 이유를 캐묻지 않는다는 점이다. 남는 것은 “웃는 얼굴만 떠오른다”는 기억의 이미지뿐. 여기서 침묵은 관계의 부재가 아니라, 관계를 더 이상 언어로 소모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현대 사회의 과잉소통 속에서 말하지 않음의 품위를 복권한다.

 

3. 「말을 걸지 말아다오」 — 예술, 신화, 비가역성의 미학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 2악장에 부쳐)

이 작품은 음악과 신화를 호출해 되돌릴 수 없음이라는 주제를 밀도 높게 전개한다. 오르페우스 신화는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예술의 본질을 묻는 구조적 장치이다. 예술은 죽은 것을 살려내는 힘이 아니라, 되살리려는 욕망이 실패할 수밖에 없음을 아는 지점에서 성립한다는 인식이 선명하다.

바람을 손으로 잡아”, “바닷물을 눈으로 잡아”라는 불가능의 연쇄는 회한과 용서, 기억을 붙잡으려는 인간의 충동을 냉혹하게 해체한다. 그리고 마침내 말한다.

“오케스트라여,

나에게 말을 걸지 말아다오.”

이는 음악에 대한 거부가 아니라, 위로받기를 거부하는 존엄한 침묵이다. “귀먹은 노인”, “고슴도치”라는 자기 규정은 방어적이면서도 체념적이며, 예술이 더 이상 자신을 구원하지 못하는 지점에서 선택한 최후의 태도이다.

 

4. 「우리만이 아니다」 — 개인의 슬픔에서 인류사의 반복으로

마지막 작품은 시야를 급격히 확장한다. 개인의 고독과 침묵은 곧바로 집단적 폭력의 역사로 연결된다. 미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 일본, 중동, 인도, 한국. 지명과 숫자는 감정을 배제한 채 나열되고, 바로 그 무감정성이 전쟁의 본질을 선명히 드러낸다.

변명하는 것이 아니다 / 합리화하는 것도 아니다”라는 반복 부정은 윤리적 태도의 핵심이다. 책임을 회피하지 않으면서도, 특정 집단만을 악마화하지 않는다. 싸움과 죽음은 예외가 아니라 인류사의 구조적 상수임을 인정하는 데서 사유는 멈춘다.

마지막 질문 —

이 지구상에서 전쟁이 멈춘 적이 있는가? / 하루라도.

— 는 답을 요구하지 않는다. 이미 답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종합 비평: 침묵으로 수렴하는 세계 인식

이 네 편은 감정의 고조를 거부하고, 대신 침묵으로 수렴하는 미학을 택한다. 말은 점점 줄어들고, 설명은 사라지며, 음악조차 “말을 걸지 말라”는 요청을 받는다. 이는 허무가 아니라 과잉 의미화에 대한 저항이다.

예술은 위로가 아니며, 종교는 구원이 아니고, 사랑조차 필수가 아닐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들이 성립하는 이유는, 바로 그 부정의 끝에서 말하지 않음으로 남는 윤리적 태도가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 네 편은 묻는다.

말하지 않고도, 위로하지 않고도, 되돌리지 않고도

어떻게 인간으로 남을 것인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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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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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금붕어 Goldfish in the fishbow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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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침묵 현금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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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32 다시 읽어보기, 글, 마른 낙엽, 시한폭탄 & 오늘의 4편 시에 대한 학술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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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43 필요 없다, 침묵, 말을 걸지 말아다오, 우리만이 아니다- 제6시집 혀Lingua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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