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먹고 한 말 또 하기
아버지는 술을 좋아하셨다.
8살 때까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날마다 술을 마시고 들어온 것이다.
왜 8살 때까지냐고?
8살 때 돌아가셨으니까.
술을 먹고 취하지 않는다.
아버지의 피를 이어 받았을테니까.
술을 즐기지 않는다.
사람들이 술을 마시고 한 말을 또 하고 또 다시 하고 하면
나는 말없이 일어나서 자리를 뜬다.
술 먹고 비틀거리며 걷는 것을 싫어한다.
술값 내고 간다.
술값 내고 가면 왜 먼저 가냐고 잡지 않는다.
이런 이야기를 어떤 친구에게 하니
자기 아버지도 술을 먹고 부부싸움을 하는 아버지가
싫었다고 한다.
아버지가 교사여서 평소 부러워했던 친구의 아버지였다.
점잖으셨던 친구 아버지.
술을 마시면 정원의 돌을 불끈 들어서
안방에 던지곤 했다고
친구는 그 말을 하면서 펑펑 울었다.
친구 아버지는 어디서 그런 술버릇을 배웠을까?
▶ 시 < 술 먹고 한 말 또 하기〉 비평
1. 서사적 서정시의 형식: 기억을 통해 존재를 말하는 방식
이 시는 서정시이면서 동시에 짧은 자전적 산문을 닮은 서사적 서정시(narrative lyric)의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적 화자는 자신의 어린 시절, 아버지, 술, 그리고 그 기억이 남긴 정서적 패턴을 단문 중심의 산문적 구성을 통해 차분히 서술한다. 이 작품의 개성은 감정의 폭발이나 수사적 장식 없이, 말하는 듯한 말하기의 질감을 유지하면서도 내면의 상흔을 절제된 언어로 드러낸 데 있다.
특히 “왜 8살 때까지냐고? / 8살 때 돌아가셨으니까.”와 같은 직설적 문장은 한 편의 회상록처럼 보이지만, 이 단호한 응시에는 부재, 상실, 그리고 ‘말하지 못했던 시간’이 농축되어 있다. 이러한 감정의 절제는 오히려 감정의 강도를 키우는 전략으로 작용한다.
2. 술이라는 매개: 폭력과 유전, 그리고 자아 형성의 문제
작품은 술을 하나의 단순한 음주 행위로 다루지 않는다. 시적 화자의 아버지, 친구의 아버지, 그리고 화자 자신에 이르기까지 술은 ‘세대 간 정서의 장치’이자 ‘가족사를 관통하는 기억의 뜨거운 불도장’으로 등장한다.
아버지의 술버릇은 돌아가신 후에도 화자에게 영향을 남긴다.
“술을 먹고 취하지 않는다 /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았을 테니까”는 생물학적 유전과 정서적 유전을 혼합해 보여주며,
“술을 즐기지 않는다”는 문장은 그 유전적 가능성을 스스로 차단하려는 의지적 거리 두기로 변환된다.
이런 대비 속에서 시는 술이 한 개인의 기질·습관·폭력성을 이어붙이는 운명적 서사가 아니라, 화자가 분리하고 분석하려는 의식적 역사임을 드러낸다.
3. ‘반복’의 미학: 제목과 주제의 완전한 대응
제목 *〈술 먹고 한 말 또 하기〉는 시 전체를 관통하는 테마이다.
시 안에서는 세 가지 형태의 반복이 등장한다.
술을 마신 사람들이 “또 하고 또 다시 하는 말”
친구 아버지가 술만 마시면 반복하는 폭력적 패턴
화자 자신의 “술에 대한 기억을 계속 되풀이하는 서술 방식”
즉, 시는 행동의 반복을 서술할 뿐 아니라 기억의 반복을 통해 서사를 구성한다.
이처럼 내용과 형식이 서로 반향하는 구조는 작품을 보다 단단한 미학적 완결성 속에 묶어둔다.
4. 폭력 없는 화자의 시선: 분리와 응시의 윤리
흥미로운 점은, 술과 관련된 남성성·가족사·폭력·기억 등 한국문학의 전형적 소재를 다루면서도, 시적 화자는 피해자이면서 피해 경험을 감정적으로 과장하거나 도덕적으로 단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단지 “말없이 일어나서 자리를 뜨는” 존재이며,
친구가 울며 고백할 때도 화자는 그의 아버지를 판단하지 않는다.
이런 태도는 단순한 무감각이 아니라
트라우마를 다루는 성숙한 거리 두기(ethical distance)의 발현으로 읽힌다.
폭력과 상처의 문제를 ‘비극’보다 ‘인간적 패턴’으로 응시하는 서늘한 시선은 동시대 시에서 드문 균형감각이다.
5. 현대 한국 자전 서정의 계보 속에서
이 작품은 1990년대 이후 한국 시에서 뚜렷하게 자리 잡은 ‘자전적 서정의 흐름’—일상 기록, 가족사, 개인적 상처를 사실적 언어로 서술하는 경향—과 연결된다. 윤성희 산문, 박연준의 시, 김소연의 초창기 시집 등에서 자주 나타나는 방식과 유사하다.
그러나 이 시는 특유의 건조한 문장, 직설적 회상, 감정의 미니멀리즘을 통해 그 흐름 속에서도 독자의 감정이 단순 공감에 머물지 않도록 만든다. 정서적 장식 없이 결핍과 상흔의 윤곽만을 보여줌으로써, 독자는 오히려 그 빈 공간을 스스로 메우게 된다. 이는 현대성의 특징인 ‘비언어적 정서의 시학’에 부합한다.
6. 결론: ‘말 없는 고백’으로 이루어진 시
〈술 먹고 한 말 또 하기〉는 겉으로 보기에 이야기처럼 자연스럽고 읽기 쉬운데, 그 이면에는
세대 간 폭력과 유전의 문제
어린 시절 상실의 정서
성인이 된 후의 자아 보호 기제
기억을 통해 반복되는 정서적 구조
말과 침묵의 윤리
등 복잡한 층위가 숨어 있다.
이 시는 술에 대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말하지 못한 가족사’를 말하는 시,
그리고 ‘반복되는 폭력의 역사로부터 벗어나려는 의지’를 기록한 시이다.
절제된 언어와 서사적 구성은 이 작품을 현대 한국 시의 미니멀리즘적 자전 서정의 뛰어난 사례로 자리매김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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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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