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지하의 난

낙관을 보니 金英一 이라는 본명을 썼고 知荷라는 호를 썼군요.
자신은 '영일'이라는 본명을 '꽃 한송이'라고 풀이하지요.
원래 워낙 지하로 피해다녀서 地下라고 했다는데, 나중에는 주로 芝河라고 했지요.
그런데 해남에서 정양하고 있을 때는 知荷라는 호를 쓴 것 같군요.
화제는
莫問西天安養國
白雲斷處有靑山인 듯 합니다.
山山水水任自閑
莫問西天安養國
라는 대구로 많이 쓰인다고 하는군요
원래 임제선사의 선시라고 합니다.
是是非非都不關
山山水水任自閑
莫問西天安養國
白雲斷處有靑山
"옳다 그르다 도무지 관계없고
산산 물물이 스로 한가하네
서방 극락세계 어디냐고 묻지 말게나
흰구름 걷히면 그대로 청산인 것을"
- 조원탁
지하 선생의 난은 자유롭고 활달하기가 세상에서 제일갑니다.
글씨와 그림을 보면 그 사람의 성품을 안다고 하는데
지하 선생의 난을 보면 가슴이 서늘한 느낌이 있습니다.
원주에서 무위당 장일순 선생의 영향으로 난을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무위당 선생의 난과는 또 다른 묘미가 있습니다.
- 김상윤
김지하의 난 그림은 巧(기교)가 지나쳐요.
글씨 역시 가늘고 휘어짐이 많아 지하답지 않아요.
유홍준이 김지하의 난 그림에 대해 '말도 아닌 칭찬'을 해서 내가 좀 듣기 싫은 소리를 한 적도 있어요.
"선배에 대한 헌사로 한 말인가, 실지로 그렇게 높이 평가하시는가?"
유홍준 선생이 나에게 뭐라고 대답했을까요?
김지하 선배는 무위당 선생님에게 동학과 생명사상을 배웠고, 그림과 글씨도 배웠지요.
무위당 선생님의 천연덕스러운 운필에 비해 김지하 선배의 그림과 글씨는 교가 너무 지나쳐 좀 그래요.
다만 김지하 선배님은 동학과 화엄사상 등에 대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깊이가 있다고 알려져 있더군요.
요즈음 김지하의 사상에 대한 공부가 여러 곳에서 진행되고 있다고 하더군요.
- 이계표
김지하 사상의 몇몇 변곡점에 깊은 천착이 필요해 보입니디ㅡ.
참고자료 1 유홍준 교수의 김지하론
[김지하를 추도하며] 김지하의 글씨와 그림에 서린 절절한 울림
1.김지하는 글씨와 그림에서도 당신의 시 못지 않은 독특한 예술세계를 보여주었다. 글씨보다 그림으로 더 잘 알려져 있고 또 그림에 더 열중하였지만, 사실상 그의 그림과 글씨는...
www.pressian.com
참고자료 2
유홍준 교수의 김지하 난초론 <4ㆍ끝>
유홍준 교수의 김지하 난초론 <4ㆍ끝>
"꽃은 시작에 불과하다"
유홍준 미술평론가 | 기사입력 2001.12.12. 10:11:00
지하형이 이번 전시회를 위해 준비한 그림은 수백 점이다. 그 중 나는 70점을 고르면서 지하형의 난초그림에는 몇 가지 유형이 있음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은 난초의 형식과 화제의 내용 모두에 해당하는 것이다.
첫째는 시인다운 서정성 내지 시정의 난초그림이다. ‘이른 아침에’ ‘댕기 같은 꽃’ ‘거친 꿈 소롯한 꽃’ ‘바람 끝에’ ‘섬처럼’ 같은 작품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러나 김지하의 시를 보면 서정시라 할지라도 상징성, 사회성, 역사성이 강하듯 그의 시정성 난초그림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영명(靈明)한 고구려 난’ ‘가비야운 고조선 난(古朝鮮蘭)’ 같은 그림에서 관객들은 화가의 역사성을 남김없이 읽어낼 수 있을 것이고, ‘바람에 홀로서다’ ‘거친 듯 간결한 곳에 님의 자리가’ 같은 작품에서는 그의 ‘황토(黃土)’ 같은 서정시집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벗어나기 힘든 슬픔이 신세대를 위협할 때’ 같은 작품의 상징성은 누구든 그 뜻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둘째는 사색의 묵란이라고 말할 명상성이다. 이번 출품작 중에는 지하형 스스로 묵란의 사상을 말한 작품이 있으니 직접 들어볼 수 있다.
“카오스 시대의 난초는 표연란(飄然蘭)이니 그 핵심은 바람과 난초를 동시에 붙잡는 것이겠다.”
이는 그의 난초그림의 형식이 지향하는 바를 말한 것이다. 이를 내용적으로 풀어서 말한다면 다음과 같은 화제를 예로 들 수 있다.
“카오스에 침잠하되 동시에 카오스를 빠져 나오는 카오스모스가 미래문화의 열쇠. 이는 이괘(離卦) 의 미묘처(微妙處)인 것.”
지하형은 항시 오늘의 세계는 천지인(天地人) 즉 인간, 사회, 자연의 대혼돈이 일어나고 있다고 진단 내리면서 삼계(三界)를 아우르면서 혼돈을 타고 넘는 문화의 개벽만이 치유의 길이라는 주장을 해왔다. 그것이 곧 카오스에 침잠하되 카오스를 빠져 나오는 것이며 이것은 그 동안 김지하가 추구해온 예술과 사상의 핵인 것이다.
김지하 묵란의 세번째 유형은 난초그림 그 자체의 미학을 구현한 것이다. 지하형은 자신의 묵란은 '표연란(飄然蘭)'이라고 선언하였다. 표연히 불어오는 바람에 휘날리는 난, 그것은 바람과 난초를 동시에 장악하는 난초그림이라는 것이다. 지하형은 자신의 '표연란'에 대해 이렇게 독백조로 말한 작품이 있다.
“소남(所南, 정사초, 원나라 때 화가)과 판교(板橋, 정섭, 청나라 때 화가) 이후에, 석파(石坡, 흥선대원군 이하응)와 완당(阮堂, 추사 김정희)과 원정(園丁, 운미 민영익) 이후에 동아(東亞)에 묵란의 명인이 없다고 나의 스승 무위당(无爲堂) 선생이 말씀하셨는데 그 까닭을 몰랐더니 오늘 가만히 생각하니 그것이 장엽(長葉)의 표연(飄然)에 있고, 종국엔 흉중의 포한(抱恨)에 있더라. 한 없이 표연장엽 없으니.
일산에서 지하.“
여기서 지하형은 자신의 난초그림이 갖는 미학을 구체적으로 모두 말한 셈이다. 일찍이 추사 김정희는 "산수화에는 대가가 많지만 난초그림에는 대가가 드물다"고 했다. 그 이유는 가슴속(胸中)에 난초를 담아낼 수 있는 정신적 무엇을 갖춘 이가 드물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사초, 정판교, 진백정 같은 이의 난초그림이 뛰어난 것은 그들 인품이 고고하고 학식이 높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것이 이른바 책 5천권을 읽은 문자향(文字香)과 서권기(書卷氣)의 획득, 그리고 장인적(匠人的) 수련과 연찬 속에 얻어진 팔뚝 아래 금강저(金剛杵)가 아니면 난을 칠 수 없다는 이론이다.
지하형은 이제 "문기(文氣) 아닌 소산지기(疎散之氣)"로 바람과 난초를 모두 장악하는 표연란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흉중의 한(恨)을 그 원동력으로 삼고 있다.
여기서 지하형은 장엽난의 가치를 재발견한 것 같다. 춤을 추는 듯한, 흐느적거리는 듯한, 바람결에 휘날리는 듯한 긴 난초잎을 통하여 존재와 상황을 압축적으로 장악하는 방법인 것이다.
지하형은 바로 여기서 오늘의 난초그림, 아니 자신의 난초그림이 지향할 형식의 틀을 발견했고, 그가 문학에서 그토록 추구했던 역사적 체험으로서 한(恨), 삶의 농축된 소망의 원형질로서 한(恨)을 담아낼 형식을 찾아낸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김지하는 그 한(恨)을 발산하는 것으로 표연란을 그리겠다는 것은 아니다. 그는 오히려 공경(敬)하는 마음, 모시는(侍) 마음으로 임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이번에 출품된 그의 난초그림을 보면 ‘지하 그리다’ 또는 ‘지하사(芝河寫)’가 아니라 ‘지하 모심’ ‘지하시(芝河侍)’라고 낙관하고 있다.
그는 단호히 말하고 있다. "생존은 모심 한 글자에 있다(生存侍一字也)." 그리고 그 뜻을 이렇게 말했다.
“평범한 난이다. 그러나 이 난에는 생존의 깊은 기쁨이 반짝이고 있다. 무엇인가를 모시고 있기 때문이다. 모심은 생명의 비밀이다.”
나는 지하형이 그런 모시는 마음으로 그리는 표연란이 이렇게 한 자리에 모여 같은 하늘 아래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당당히 선보이게 됨을 누구 못지않게 기쁘게 생각한다. 지금도 지하형 하고 부를 때면 20대 청년 시절에 만났던 그 청춘의 맥박이 느껴지는데 벌써 형님은 환갑을 넘겼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그러나 캄캄하기만 하던 원주 시절, 당신의 작은 서재의 벽이 온통 먹으로 가득 칠해져 있던 그때부터 묵란의 연륜이 20년을 넘겼고 그 연륜 속에 가슴으로는 표연란의 미학을 품어안고 팔뚝 아래에는 금강저 같은 굳셈을 더해가는 것이 기쁘기만 하다.
그리고 지난 세월 나 자신의 마음의 빚으로 삼고 있던 ‘김지하의 묵란에 대한 비평적 증언’이라는 글을 쓸 수 있게 된 그 홀가분함이 더없이 기쁘기만 하다. 그런 기쁨은 참으로 '긴긴 기다림'에서 얻은 것이다.
그러나 나는 결코 들뜬 마음으로 그의 전시회를 맞지는 않을 것이다. 지하형은 나에게, 우리에게 이렇게 경고한다.
"꽃은 시작에 불과하다."
2. 추사 선생의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
▶ 지하 선생의 난과 대비되는 난이 추사 선생의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 입니다.

* 추사 김정희의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 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2018년 손세기·손창근 컬렉션으로 기증
1) ‘불이(不二)’의 뜻
불이는 불교, 특히 선종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으로 둘이 아니다, 대립이 끊어진 경지 를 뜻합니다.
- 주체 / 객체
- 나 / 너
- 형상 / 공(空)
- 말 / 침묵
이 모든 이분법이 사라진 자리,
차별 이전의 하나됨, 곧 깨달음의 자리를 가리킵니다.
2. ‘선란(禪蘭)’의 의미
- 난(蘭)은 전통 문인화에서 고결함, 은자의 절개,군자의 덕을 상징합니다. 여기에 선(禪)이 붙음으로써 이 난초는 단순한 사군자가 아니라,
즉 보이는 난초는 상(相)이지만,
그 난초를 그리게 한 마음은 무상(無相)의 경지에 놓여 있습니다.
3. 화제의 핵심 사상
추사의 화제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함축합니다.
선종의 유명한 말과 정확히 호응합니다.
- “見山是山 見水是水 → 見山非山 → 見山還是山”
- 깨달음 이후,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되 집착이 사라진 상태
4. 추사 예술관과의 연결
추사에게 난초는
- 자연의 재현이 아니라
- 자기 수양의 흔적
- 학문과 고독, 유배의 시간에서 길러진 정신의 잔향입니다.
붓은 움직였으나 의식은 개입하지 않은 상태,
곧 무위(無爲)의 필선을 지향합니다.
이 난 그림에 대한 설명 2개입니다.
-
2) 추사선생의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 설명/ 김관식
출전: http://blog.daum.net/4855028/15867764
김정희 서법과 난 그림 - 김현권-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 는 詩書畵禪 합일의 결정체이다/ 조원탁
- 0열 선택0열 다음에 열 추가
- 0행 선택0행 다음에 행 추가
|
출전: 김현권, 추사 김정희의 묵란화, 美術史學 제19권 1집, 2005
|
- 셀 병합
- 행 분할
- 열 분할
- 너비 맞춤
- 삭제
김정희는 난은 서법으로 그려야 하며, 인격과 인품의 수양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문자향과 서권기가 구비되어야 난초를 그릴 수 있다고 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그의 편지속에 이런 내용이 있다.
" 여기 종이를 많이 보내온 것을 보니 자못 실소를 금치 못하였다. 난을 치는데는 종이 서너장만 가지면 충분하다.
神氣가 서로 모이고 境遇(우연히 만나는 것)가 서로 융화되는 것은 글씨나 긂이 똑같이 그러하지만 난은 치는 데는 그것이 더욱 많이 작용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지금 약간의 종이에만 그려 보내고 보내온 종이를 다 쓰지 않으니 모름지기 그 묘리를 터득하는 것이 좋다 "
즉 김정희가 강조한 것은 서법으로 그릴 것, 서권기와 문자향을 갖출 것, 神氣와 境遇, 즉 자연스러운 창작 동기와 고양된 흥취를 강조하였다.
김정희가 추구한 최고의 마지막 경지는 詩書畵禪의 합일이었다. 이는 그의 不二禪蘭에 나타난다. 鄭燮의 역행법으로 쓴 다음의 제화문은 작품의 제작동기를 밝히고 있다.
“ 애초 달준이를 위해 아무렇게나 그렸으니 오직 한 번만 그릴 수 있는 것이지 두 번 다시 그릴 수 없는 것이다 仙客老人”
김정희가 ‘불이선란‘을 주려고 했던 사람은 다름아닌 시중을 들던 달준이라는 학동이었다. 그렇게 때문에 그가 애써 공들여 그릴 필요가 없었던 것으로 마음이 빈 상태였다. 그는 이런 상태였기 때문에 전혀 공백을 들이지 않고 일순간에 그려 나간 것이며 묵란의 기본 법식이나 그가 일관되게 추장해왔던 삼전법 등은 엄정하게 지키려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묻어 나올 뿐이었다. 김정희는 이러한 묵란화의 경지를 ’유마경‘ 전반에 흐르는 空과 無法이라는 의미와 상통하는 것으로 보았다. 역행으로 쓴 아래의 제화시는 그런 작품의 의미를 보다 함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난초 그림 그리지 않은 지 20년 만에 우연히 본성의 참모습을 쳐냈네.
문 닫고 찾으며 또 찾은 곳 이곳이 유마의 不二禪일세
만약 어떤 사람이 억지로 요구하며 구실을 삼는다면 또한 마땅히 유마거사의 무언으로 사양하리라 曼香“
김정희는 절필한 지 20년 만에 그려낸 난초의 참모습을 維摩經의 不二法에 연결하였다. 不二法은 말과 글로 진리를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불이선이 곧 그림 속 난초이기에 이 작품은 세상은 법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한 회화적 경지는 구천구백구십구분을 노력으로 성취하고 나머지 일분마저 이룬 뒤의 경지를 넘어서는 것으로 선가의 득도를 거친 이후에 펼쳐질 无涯(무애)의 경지인 셈이다. 김정희는 이렇게 畵禪일치를 실현하였으며, 또한 그 의미를 시로 함축하였으므로 詩畵일치를 꾀한 것이다.
재미있는 이야기:
위에 소개한 바 대로 추사 선생은 20년만에 난을 그렸다.
그런데 옆에서 시중을 들던 학동 또는 일하는 청소년에게 선물을 한 것이다. 그런데 추사 선생의 그림을 흠모하던 이가 그 청소년으로부터 바로 구입을 해갔다고 전한다.
천하의 불이선란도의 시작은 이렇게 미묘하고 즉흥적인 곳에서 시작하였다. 예술의 아름다움은 작정하고 나선 그림이나 연주보다도 흥이 도도하여 번갯불처럼 영감이 스쳐갈 때 빛나는 작품이 나오기도 한다.
3. 조원탁의 난 - 같이 가자 우리 이 길을, 숲 속에 혼자 있어도

같이 가자 우리 이 길을

숲속에
혼자
있어도
조용히
웃는다.
不慍(불온) 의
마음이다.
난을
가까이
하는 이유이다 .
* 不慍(불온)
사람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서운해하거나 화내지 않는 마음(공자)
인부지이불온(人不知而不慍)은 논어 학이편 첫 장에 나오는 구절.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워하지 않으니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

떡갈나무와 난
'미술'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고사관수도(高士觀水圖), 강희안 - 김상윤 그림이야기 (0) | 2026.01.30 |
|---|---|
| 탐방: Getty Museum, LA, U.S. - 반 고흐(붓꽃 Iris), 세잔, 모네, 마네, 밀레, 드라크루와, 르누아르, 드가 & Museum of Fine Arts, Boston, “빛의 화가” 클로드 모네(Claude Monet)의 연작 해설 (0) | 2026.01.29 |
| 경상도의 분청, 전라도의 분청- 조기정 최차란 도예가 (0) | 2026.01.26 |
| 紅雨堂 이윤희 서예전 & 평론: 升堂入室(승당입실) 의 미학-당(堂)에 올랐을 뿐 아니라, 여러 개의 방을 오가며 새로운 방을 만들어내는 단계 (1) | 2026.01.25 |
| 박행보의 대나무 그림- 김상윤의 그림 이야기 (0) | 2026.01.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