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원탁

몇 십년전 古現 조기정 선생 댁을 방문한 적이 있다. 고려청자 비색을 오롯이 재현하였다는 평가를 받는 선생의 작품을 전시해 놓은 선생님 댁의 전시관을 둘러보았다. 아름다운 고려청자의 색도 색이지만 수많은 실험적인 작품이 놀라웠다. 당대 최고의 화가인 의재 허백련 선생님을 비롯한 당대의 미술가들과 협업하여 그림과 도자기가 결합된 작품들이 볼 만하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인 것은 고려시대 정병 작품이었다. 한참을 서 있자 古現 선생께서 '그 잘룩한 중간부분이 어디를 닮았는지 아시오?' 해서 부끄럽게 '여인의 허리선 같습니다' 답하였다. 그러자 선생께서 '그렇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선이지요' 하셨다.
한참을 머물러 그 작품을 보고 있다가 “선생님 이 작품을 제가 소장하면 안 될까요?” 물었다. 선생께서 1초도 생각하지 않고 바로 “이 작품은 안 됩니다. 다른 작품은 몰라도. 이 작품을 기준선으로 미적 기준을 삼아 다른 작품을 하고 있기 때문에 안 됩니다” 말씀하셨다.
할 수 없이 사진만 찍고 돌아왔다. 알고 있던 도예가를 만나 “이 작품을 그대로 만들 수 있는가요?” 물었다. 그러자 “쉽지요” 하신다. 그 분도 40년 이상 도예를 하신 분이다. 중고등학교때부터 전문도예학교를 다녀서 자부심이 컸다.
한 달 후 연락이 왔다. 완성이 되었다고. 만나자 마자 대뜸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고 하였다. 하나를 만들었는데 마음에 들지 않아서 두 개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 즈음 고현 조기정 선생의 부음을 들었다.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새로운 작품을 구상하기 위하여 남에게 작품을 건네는 것을 거절하였던 것이다.
만들어진 정병 두 개중 하나를 존경하는 분께 드렸다. 그 분은 보자마자 '이렇게 귀중한 것을 어떻게 구했냐'고 하신다. 드리고 남은 하나의 정병이 위쪽에 놓인 정병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바라보면 그 정병에 물을 담아 소원을 빌던 옛 선인들의 마음을 생각하게 된다. 정병, 지금으로 치면 일종의 주전자이다. 그런데 정화수를 담아 기도를 드리던 이름부터가 성스러운 기분이 든다.
고현 조기정 선생 약력
https://spp5908.tistory.com/9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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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윤 : '나는 이렇게 생겼다'는 기백이 있군요.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입니다.
- 조원탁: 네 그렇게도 보이는군요. 그런데 고현 선생님의 정병 작품사진을 보고 만드신 도예가 선생님이 아무래도 고현 선생님 작품에는 여간 미치지 못합니다. 연신 말씀을 하시더군요. 형태는 비슷한데 그 곡선에 담긴 아련한 미감이 담기지 못했다는 말씀인 듯 하였습니다.
- 김상윤: 그래서 도공들이 애써서 만든 작품들을 깨버리기도 했겠지요.
- 이계표: 평동공단 옆 광산구 연산동에 사셨지요.
광주시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셔서 가까이에서 뵈었습니다.
고현 선생은 법대 출신이지만 청자 재현을 위해 노력을 많이 하셨어요. 그 공로로 청자도공이란 이름의 무형문화재로 지정됐어요. 지금은 기능성이 높은 분은 산자부에서 '명인'으로 지정합니다.
- 조원탁
20여 년전에 경주의 최차란 도예가를 방문하였습니다. 대부분 도예가들은 좀 부족하다 싶은 작품들은 모두 깨버립니다. 그런데 그 분은 자식같아서 못 깬다고 자신의 비밀정원secret garden이라고 하면서 아주 큰 창고에 가득한 작품들을 보여주었습니다. 그야말로 창고에 가득입니다.
그중에서 5점 정도를 골랐습니다. 고른 작품들을 최차란 도예가가 보더니 자기는 무척 애정을 가진 작품들인데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아서 이 창고에 두었다고 합니다. 그중에서도 도라지꽃을 형상화한 작품은 아끼는 작품인데 눈길을 주어서 오히려 감사하다고 하였습니다.
사례를 드린다고 하니 그냥 지갑에 있는 것만 주라고 합니다.
그래서 지갑에 있는 현금을 모두 드렸습니다.
저의 애장품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
거친 듯 하지만 도라지 꽃잎 모양이 아름답습니다.


탑 모양 작은 연적

호로박에 다람쥐가 달린 연적

금박 무늬 다완
탑 모양 연적, 다람쥐가 앉아있는 연적, 금박대접 무늬가 정교하였습니다. 이렇게 정교한 작품들이 왜 폐기창고에 들어가 있을까 의아스러웠습니다. 너무 뛰어난 아이디어를 담은 작품들은 일반대중들의 눈에는 낯선 모양입니다.
너무 독특하다 보니 사람들의 손길이 미치지 않았는가 봅니다.
최차란 선생님은 4번의 암 선고를 받고 투병하면서도 끝까지 작품활동을 하였습니다. 경주도요지에 주치의사와 같이 방문하였습니다. 그 때 3번째 치료를 마치고 요양중이었습니다. https://blog.naver.com/gebby/100029035063
경주사람들은 최차란 도예가가 동학의 최시형 선생 후손이라고들 하더군요.
- 김상윤
연적이 독특한 모습입니다.
인화분청도 소장하고 계시군요
이 지역에서도 인화분청을 만들었지만, 전라도는 주로 박지조화분청을 만들었지요.
나에게도 덤벙분청이 있지요.
덤벙분청은 기교를 부릴 필요도 없고, 또한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분청의 모습이 천연스러워 사랑스럽습니다.

다 아시는 내용이지만 분청사기를 한 번 정리해 보겠습니다.
분청사기는 회색 또는 회흑색 태토에 백토로 표면을 분장한 조선 초기의 도자기입니다.
'분장회청사기'의 준말이라고 합니다.
고려청자가 고려 귀족들의 미감을 나타내고 조선백자가 조선 사대부들의 미감을 드러냈다면, 그 사이에 틀을 벗어나 서민들의 미감을 마음껏 드러낸 것이 분청사기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분청사기는 분청에 덤벙 집어넣은 덤벙분청이나 귀얄이라고 부르는 붓으로 자유스러운 선을 긋는 귀얄분청도 있지만, 기법상으로 세 가지로 나누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전라도를 중심으로 박지조화분청, 경상도를 중심으로 인화분청, 계룡산 주변에서 만들어진 철화분청 등 세 가지로 주로 나눕니다.
박지조화분청은 자기의 표면을 약간 파내고(박지) 꽃이나 물고기 등을 그려넣는 기법이고, 인화분청은 무늬를 도장 찍듯이 자기의 표면에 가지런히 찍어낸 것이고, 철화분청은 산화철로 자유분방하게 그림을 그린 것이라고 합니다.
고려자기나 조선백자가 주로 지배층의 미감을 표현했다고 하면 분청사기는 틀이나 규범에서 벗어나 서민들의 미감을 자유스럽게 드러낸 특징이 있다고 합니다.

덤벙분청

귀얄분청

박지조화분청

인화분청

철화분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