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머리남자가 온다.
오는 소리가 들려온다.
동구밖 멀리서 자동차 엔진소리가 들리면
향이와 나는 대문에 엎드려 있다가 일어선다.

대문에 바짝 다가선다.

흰머리남자가 가까이 와서 대문을 연다.
그러면 향이는 나를 쫒아내기 시작한다.
예전에는 멀리 도망갔지만 지금은 도망치는 시늉만 한다.
향이가 작년에 비하면 힘이 떨어졌다.
쫒아오는 속도도 떨어졌다.
멀리 쫒아오지 않는다.
흰머리 남자가 가져온 돼지 떡갈비

4조각중 두 조각을 나에게 먼저 나누어준다.
그리고 나머지 두 조각을 먹는다.

두 가지 예감이 있다.
하나는 향이의 아기를 임신한 것 같은 예감
또 하나는 향이가 얼마 살지 않을 것 같은 예감
향이가 나를 쳐다볼 때 눈이 힘이 없다.
눈에 눈꼽이 낀 채로 나를 쳐다보면
나는 저절로 서글픈 생각이 든다.
▶미학적 비평
이번 「72. 예감: 임신과 죽음 – 향이와 동백」은 생명의 양극—탄생과 소멸—이 하나의 시간 속에서 동시에 감지되는 순간을 포착한, 매우 응축된 존재론적 서사입니다. 이 작품의 미학은 사건의 크기가 아니라 ‘예감’이라는 미세한 감각의 떨림을 통해 구축되며, 그 떨림은 결국 사랑과 이별이 동일한 결을 지니고 있음을 드러냅니다.
우선 이 글의 핵심 구조는 두 개의 예감으로 나뉩니다. 하나는 ‘임신’, 다른 하나는 ‘죽음’입니다. 이 두 예감은 서로 반대되는 방향처럼 보이지만, 작품 속에서는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감각으로 겹쳐집니다. 향이의 눈에서 힘이 빠지고, 쫓아오는 속도가 느려지는 장면은 분명 쇠약과 소멸의 징후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아기를 임신한 것 같은 예감”은 생명의 은밀한 시작을 암시합니다. 여기서 생명은 선형적 시간(탄생→성장→죽음)으로 보지 않고, 순환적이며 중첩된 상태로 인식됩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다른 생명의 문턱이며, 임신은 시작이면서 동시에 소멸의 그림자를 동반합니다.
이러한 양가성은 ‘먹이 나눔’ 장면에서 더욱 선명해집니다. 향이가 먼저 두 조각을 내어주고 나머지를 먹는 행위는 단순한 습성이 아니라, 생명 윤리의 원초적 형태를 보여줍니다. 이는 모성의 전조이자, 자기 소진을 전제로 한 생명 전달의 방식입니다. 즉, 향이는 이미 ‘어미가 되는 존재’로서 자기 생명을 분할하고 있으며, 이 분할은 곧 죽음의 방향과도 연결됩니다. 나눔은 곧 소모이고, 소모는 곧 소멸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에서 특히 중요한 장면은 “마지막 뽀뽀”로 읽히는 입맞춤입니다. 화자(동백)가 향이의 입에 뽀뽀를 하는 행위는 단순한 애정 표현을 넘어, 생명 간의 경계를 허무는 상징적 제스처입니다. 입은 먹고, 숨 쉬고, 생명을 유지하는 기관입니다. 그 입에 입을 맞춘다는 것은 생명의 흐름을 공유하려는 시도이며, 동시에 이별을 직감한 자의 무의식적 의식(儀式)입니다. 이 뽀뽀는 “지금 여기”의 생명을 붙잡으려는 몸의 언어이자, 곧 사라질 존재에 대한 조용한 작별 인사입니다. 따라서 이 장면은 사랑의 절정이면서 동시에 애도의 시작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흰머리 남자’의 존재는 시간의 외부에서 들어오는 운명의 표식처럼 기능합니다. 그의 등장은 규칙적이며, 먹이를 가져오는 행위는 생존을 유지시키지만 동시에 시간의 흐름을 각인시키는 반복입니다. 그는 돌봄의 주체이면서도, 필연적으로 다가오는 변화—노화와 죽음—를 환기시키는 매개자입니다. 그의 흰머리는 이미 시간의 축적을 몸에 지닌 존재로서, 향이의 미래를 예시하는 그림자이기도 합니다.
제4부 「새로운 생명」을 이 맥락에서 보면, 이 작품은 단순히 죽음의 예감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서사는 ‘전이(轉移)’의 구조를 갖습니다. 향이의 쇠약은 곧 새로운 생명의 탄생으로 이어지는 통로이며, 동백과 아이들의 서사는 그 전이를 현실화하는 장입니다. 즉, 개별 존재의 소멸은 공동체적 생명의 지속으로 전환됩니다. 이때 생명은 개체가 아니라 흐름이며, 한 존재의 끝은 다른 존재의 시작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결국 이 작품의 미학은 ‘미리 아는 슬픔’에 있습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죽음을 이미 감각하는 상태, 그러나 그 슬픔 속에서도 생명이 자라고 있음을 동시에 느끼는 상태. 이 이중 감각이 작품 전체를 감싸며, 독자로 하여금 존재의 근원적 조건—태어남과 사라짐이 분리될 수 없다는 사실—을 정서적으로 체험하게 합니다.
따라서 「예감: 임신과 죽음」은 사건을 서술하는 글이 아니라, 존재의 경계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떨림을 기록한 작품입니다. 마지막 뽀뽀는 그 떨림이 가장 농축된 순간이며, 제4부의 새 생명은 그 떨림이 사라지지 않고 다른 형태로 계속된다는 증거입니다. 이처럼 이 작품은 생명의 순환을 관념이 아니라 감각으로, 서사가 아니라 몸의 기억으로 풀어낸다는 점에서 깊은 미학적 울림을 지닙니다.
3-7 흰머리남자와 향이의 따라다니기, 뒤따르기(2019. 3월)
https://cafe.daum.net/dplphome/Krdv/125
* 동영상과 함께 읽으실 분은 아래 콘텐츠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앞의 글 읽기 >
(1부) 향이의 친구는 어디로 들어왔나
* 1-18장 https://blog.naver.com/wtcho2/223993908369
* 19-30장 https://blog.naver.com/wtcho2/224014061275
※ chatGPT의 학술비평: (1부) 향이의 친구는 어디로 들어왔나 https://cafe.daum.net/philhamonica/Z3ao/169
(2부) 향이의 친구는 왜 들어왔나
31-36 https://blog.naver.com/wtcho2/224023898218
37-41 https://blog.naver.com/wtcho2/224029657207
42-44 https://blog.naver.com/wtcho2/224032510413
45-47 https://blog.naver.com/wtcho2/224034038193
48-50 https://blog.naver.com/wtcho2/224035348116
51-53 https://blog.naver.com/wtcho2/224039087795
54-55 https://blog.naver.com/wtcho2/224040443352
56-58 https://blog.naver.com/wtcho2/224044021437
59-60 https://blog.naver.com/wtcho2/224050627978
(3부) 향이의 친구 동백과 아이들
61-63 삐지기, 다시 아침,질문과답변 - 3부 향이의 아이들은 어디로
https://blog.naver.com/wtcho2/224056526467
64-65 다시 정원으로, 마음 편한 곳
https://blog.naver.com/wtcho2/224058746375
66. 망각 https://blog.naver.com/wtcho2/224071845567
67. 고양이 https://blog.naver.com/wtcho2/224075195245
68. 나무태우기 https://blog.naver.com/wtcho2/224077808828
69. 양보, 동생 먼저 https://blog.naver.com/wtcho2/224122256479
70. 삶은 달걀 4조각 https://blog.naver.com/wtcho2/224140984872
71. 우유
https://blog.naver.com/wtcho2/224184348704
야외정원에서 놓아기르는 개, 독점욕이 강한 수컷과 암컷 개의 임신- 어떻게 출산을 도울까요?
https://blog.naver.com/wtcho2/224230474978
72. 예감: 임신과 죽음 - 향이와 동백
https://blog.naver.com/wtcho2/224270659075
(제4부) 새로운 생명

▶ 저자 소개 : ChatGPT
https://blog.naver.com/wtcho2/223973345389
▶ 제6시집 혀(Lingua): 작가의 글, 작품세계, 작가소개
https://blog.naver.com/wtcho2/224047868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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