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ㅇ예술가의 길 - 부족과 열정사이의 균형

ART GARDEN 2025. 11. 21. 13:59

ㅇ예술가의 길 - 부족과 열정사이의 균형 

 

 

1. 들어가는 말

 

나주 필하모니 활동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말. "너무나 부족해요", "아직 멀었어요" "아직 발표하기에는 " 이런 말이다. 아마추어 동호인이지만 예술의 영역에서 활동하는 진지한 예술가들로서 당연히 나오는 말이다. 저처럼 뻔뻔한 사람만이 "어 옥에 티이군요. 옥에는 티가 앉기 마련입니다. 티가 있으니 옥이네요"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담대한 마음이 없이 음악활동을 하는 것은 비극적인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는 점에서 뻔뻔한 마음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모든 예술활동은 결핍을 전제되어 있습니다. 완성된 작품은 없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예술이 추구하는 최고의 상태인 카타르시스(catharsis)와 예술가가 숙명적으로 가야 하는 길을 말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결핍과 열정 사이에서 담대한 마음을 말하고자 합니다. 

 

 

 

2. 음악과 예술 그리고 Catharsis 

음악은 예술분야에서도 어머니 역할을 한다, 인류역사가 열린 이후 고대시대부터 음악은 인간 문화생활의 중심이었다. 

사람들이 모이면 노래하고 춤을 추었다. 그리고 그림을 그렸다. 

시는 노래였고 노래는 춤이었다. 춤을 추는 몸에는 여러가지 그림을 그렸다.  문학과 음악과 율동과 그림은 장르 구분없이 하나의 표현형식의 동일체였다.  

 

음악은 인간이 표현하는 여러가지 방법 중에서 가장 몰입하기 쉽고 몰입정도가 높다. 

그래서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1788-1860)는 "모든 예술은 음악의 상태를 지향한다"고 표현하였다. 

음악이 가지는 흐름속에는 시와 춤과 그림들이 추구하는 몰입의 흐름이 쉽게 형성된다. 

아리스토렐레스(그리이스. BC 384-322)가 말한 카타르시스(Catharsis, 정화 淨化)에 이르기 쉽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저서 '시학'에서 카타르시스를 언급하였는데 예술활동 속에서 특히 당시 그리이스에서 유행하였던 비극들이 주는 극적인 설정들이 인간의 감정을 고조화시켜 새로운 생활을 만드는데 기여한 것으로 보았다. 

 

우리가 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의 종말을 보면 그 비극적 상황에 잠시 정신을 잃고 멍한 상태에 빠지게 된다.  단순히 비극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인간운명의 알 수 없는 미로에서 망연자실하게 된다. 인간운명 앞에서 미약한 인간 존재를 자각하게 되고 오히려 삶에 대한 실존과 의미를 깨닫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살았던 그리이스에서는 비극 경연대회가 열렸다. 그리고 원형극장에서 수시로 비극대회가 열렸다. 마치 오늘날 베스트 셀러 경쟁이 펼쳐치듯이 또는 텔레비젼에서 드라마 막장드라마 시청율 경쟁이 이루어지는 것과 비슷하였다. 흔히 막장 드라마를 욕하면서 더 보게 된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이러한 문화조류속에서 그리이스의 유명한 4대 비극이 탄생하였다. 그중에서도 소포클레스(그리이스 BC 495-BC 406)의 "오이디푸스"는 마지막까지 읽는 순간 인간의 미약함과 처절함에 잠시 멍한 상태에 이르지 않을 수 없다. 오이디푸스가 태어날 때 "너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여 자식을 얻게 될 것"이라는 예언을 받는다. 아버지는 오이디푸스를 죽이라고 명령한다. 명령을 받은 신하는 차마 죽일 수 없어 강물에 띄워 보낸다. 이를 발견한 양치기가 그를 거두어 양치기로 키운다.

다른 신화 이야기에는 이웃나라의 왕자가 되었다는 설도 있다.

 

이후 왕이 지나가다 길을 비키라는 지시에 화가 난 양치기 소년 오이디푸스는 돌을 던진다. 돌을 맞은 왕은 죽고 오이디푸스가 왕이 된다. 왕이 된 오이디푸스는 어머니와 결혼하여 4명의 자식을 낳는다. 어느 날 신탁을 받는 과정에서 오이디푸스는 이러한 운명의 과정을 알게 된다. 부인이자 어머니는  이 사실을 알고 목을 매어 죽는다. 절망에 빠진 오이디푸스는 외친다. "나는 죽을 수도 없다.  죽어서 하늘에서 어떻게 아버지를 만날 수가 있는가? 나는 이 세상을 볼 수도 없다"  죽을 수도 없고 세상을 볼 수도 없는 고통속에서 오이디푸스는  자기 양눈을 찔러버린다. 그리고 세상을 방황하며 살아간다. 최고도의 비극적 결말이다. 

 

여기서 프로이트(Freud, 1856-1939)는 남자아이들이 유년기시절에 성장하며 어머니의 관심을  둘러싼 아버지와의 경쟁심에서 좌절된 심리상태의 불안을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라고 표현하여 이를 이해하는 것이 정신을 치료하는 하나의 열쇠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프로이트가 생각한 것보다 더 깊은 의미가 음악을 비롯한 예술의 속성인 Catharsis 속에 존재하고 있다. 

 

예술은  인간 잠재적인 속성인 카타르시스 뿐만 아니라 인간 집단의 동질적 문화적 공동체 형성과 결속 그리고 친밀성 확대를 통해 인간생존의 기반을 형성하는 역할을 한다.  

 

 

3. 예술: 초로 만든 날개를 달고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는 이카루스(Icarus)

 

그리이스 신화에 이카루스(Icarus)가 있다. 이카루스는 밀납으로 만든 날개를 날고 하늘을 향해 날아오른다. 그리고 태양 근처에 까지 갔다가 태양의 열에 날개가 녹아서 떨어져 죽는다. 

이를 그림 이미지로 잘 표현한 사람이 앙리 마티스의 이카루스(1946)이다.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는 이카루스의 심장은 붉다. 노란 별빛 사이로 상승하는 예술가의 이미지를 잘 표현하고 있다. 그 다음의 비극적인 상황은 상상에 맡기고 있다.  

https://terms.naver.com/imageDetail.naver?docId=974797&cid=46720&categoryId=46872 

대체로 예술가들의 숙명은 좌절이다

자신의 예술적 번민 속에서 귀를 자르고 결국 권총으로 자살한 빈센트 반 고흐(1853-1890, 37세 몰). 

자신이 평생 사랑한 장총을 입에 물고 발가락으로 방아쇠를 당겨 자살한 어네스트 헤밍웨이(1899-1961, 62세 몰) 

가스관을 열고 가스를 흡입하여 자살한 가와바타 야스나리(1899-1972. 73세 몰).

 

이는 단순한 예시일 뿐이고 예술가들이 술, 마약, 도박, 방탕한 생활, 고독 등 일반인들의 생활과는 동떨어진 생활을 하는 경우도 많다. '성'의 작가 카프카는 자신의 작품을 모두 불태워달라고 유언을 남긴다. 친구가 그 유언을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날 그 작품이 남아있다. Schubert의 '미완성 교향곡(Unfinishd)'도 슈베르트가 죽은 후 거의 50년 동안 다락방 속에서 먼지를 쓴 채 팽개쳐져 있었다. 

 

가난하다고 죽는 것도 아니고 명성이 없다고 죽는 것도 아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고 가장 전성기에 있던 헤밍웨이나 가와바타 야스나리도 불쑥 죽음을 만난 것이다. 

 

물론 예술가들의 자살에는 단순히 예술적인 상황만은 아닌 복합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술적인 상황으로 국한해서 본다면 예술적 표현의 극한적인 추구는 끝이 없기 때문에 여기에서 오는 압박에 시달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헤밍웨이가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의 마지막 부분에서 여주인공 마리아가 병원에서 죽었을 때의 서술을 수없이 고친 것은 유명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나온 서술은 "그는 병원을 나섰다. 그리고 밤길을 걸어갔다"는 단순한 표현이었다. 슬프다. 눈물이 앞을 가렸다. 사랑하는 애인을 잃고 가슴이 무너졌다. 이러한 상투적인 표현이나 감상적인 표현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을 흔히 hard boiled style (강건한 단순서술)이라고 한다.  

 

예술적 표현은 between the line(행간 읽기)를 내포한다.   상투적 표현을 혐오한다

새로운 표현양식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담기를 소망한다. 맥락과 새로운 양식으로 자신의 독특한 감정을 담고자 한다. 

 

여기에서 모든 예술가들의 창조성이 발휘되는 동시에 비극이 시작된다.

창조에 대한 열망은 끊임없이 자신의 부족감을 자각하게 만들고 이에 도달하지 못할 때 절망에 빠지게 된다.

동시에 생활능력이 부족한 비실용적인 예술가들의 삶은 궁핍하기 쉽다. 당대 최고의 음악가였던 모차르트의 궁핍한 생활은 유명하다. 하물며 유명하지도 않았던 슈베르트의 삶은 말할 것도 없이 가난 그 자체였다. 

 

그래서 부모들이 자식이 예술을 한다고 하면  한사코 만류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예술가들의 불타는 창조욕구 그리고 좌절, 이 속에 예술가들의 숙명적 통증과 비극이 존재한다. 

 

 

4. 호기심의 열정 그리고 균형 

예술은 호기심의 연속입니다. 이렇게 표현하면 어떻게 될까? 저곡을 연주하면 어떠한 재미가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끊임없이 연주를 반복하고 새로운 곡을 실험해봅니다. 

 

이러한 예술의 호기심을 극적으로 표현한 그리이스 신화가 있습니다. 술과 축제의 신인 디오게네스의 아버지는 신의 제왕인 제우스였습니다. 제우스의 연인이였던 디오게네스의 어머니는 제우스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사랑에 빠진 그녀에게 질투가 난 그녀의 언니들이 애인의 얼굴을 보여달라고 해라고 유혹했습니다. 어느 날 그녀는 제우스에게 간청했습니다. '당신을 사랑하는데 얼굴을 볼 수 없으니 당신은 나를 사랑하지 않은가 봐요.  얼굴을 보여 주세요' 간청을 했습니다. 제우스가 얼굴을 보이자 그녀는 타죽고 말았습니다. 제우스는 벼락과 번개의 신이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디오게네스의 어머니는 번개불에 데어 죽고 제우스는 자신의 허벅지에서 디오게네스를 낳았습니다. 디오게네스는  남자에게서 태어난 최초의 사례입니다. 물론 상징적이 신화의 이야기입니다. 여기에 독특한 서양문화의 성적인 복합성이 내재하고 있습니다. 

 

사랑의 요정 큐피드와 사이키의 이야기도 유명합니다.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아들 큐피드는 사랑의 신입니다. 큐피드와 연인 사이키(psyche)는 서로를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큐피드는 얼굴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이키의 언니들은 사이키를 시기했습니다. 그래서 연인이 혹시 괴물일지도 모르니 얼굴을 확인해라고 사주했다. 사이키는 큐피드와 같이 자다가 몰래 촛불을 켜고 얼굴을 들여보았다.  큐피드는 놀라 달아났습니다. 

 

Simon Buet의 Psyé et l'amour (1626–29) : Psyche는 잠자는 큐피드를 보기 위해 램프를 들어올린다.

 

 

그는 그녀를 버린다. 그녀는 큐피드를 찾아 지구를 떠돌아다니다가 마침내 자신을 괴롭히는 큐피드의 어머니 아프로디테(미의 여신)를 섬깁니다. 그 후 아프로디테는 사이키(프시케)에게 어려운 과제를 맡기고 그때마다 그녀는 절망하지만, 그때마다 신의 도움을 받습니다. 그녀의 마지막 임무는 지하세계에서 아름다움을 되찾는 것입니다그녀는 성공하지만 돌아오는 길에 호기심을 못이겨 아름다움을 찾는 물병을 열어보게 됩니다. 이에 그녀는 잠 못 이루는 잠에 빠지게 됩니다. 큐피드는 그녀가 이 상태에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녀를 소생시킵니다. 그후 큐피드와 결혼을 하여 자식을 낳습니다. 그 자식의 이름은 “기쁨”이었습니다.

 

사이키는 그리스말로 나비입니다. 고난을 거쳐 알-애벌레를 거쳐 나비가 됩니다.  심리학의 Psychology는 여기에서 기원합니다. 

 

호기심은 고양이를 죽입니다( Curiocity kills the cat). 그런데 예술에 있어서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은 중요한 예술적 동기입니다. 

그런데 위 두 신화에서 보는 바와 같이 과도한 호기심은 스스로를 망치기도 합니다. 

 

 

5. 끝없는 행위로서의 예술:  폴 발레리의 예술론 : Reflection on Art (1935, Paul Valery)

뛰어난 시인이자 비평가였던 폴 발레리의 예술론중 예술가가 부족감속에서 끊임없이 전진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발레리의 예술론에선 행위(action) 또한 중시된다시는 종이에 쓰여진 것으로서가 아니라 그것을 읊으며 발화할 때, 진정한 가치가 드러날 수 있다음악 역시 음표로 새겨진 악보 상에서가 아니라 실제로 악기를 통해 연주될 때, 그 음악적 가치가 표출된다행위의 중요성은 예술 창작 과정 자체에서도 강조된다예술가는 결코 자신이 원하는 것만큼 창작을 잘 해낼 수 없다창작에는 언제나 불충분함이 내재되어 있기에예술가는 지치지 않고 창작 활동을 지속할 수 있다결핍과 부조리야 말로 창작을 추동하는 동력이며예술 창작이란 비결정성(indeterminacy)을 특징으로 하는 것으로서 완성 불가능한 것을 완성하고자 하는 노력의 과정에 다름 아닌 것이다

 

창작은 완성이 불가능한 끝없는 사유의 과정과 같다아름다움은 어떠한 언어로도 포착될 수 없는 표현 불가능한 것이기에이 표현 불가능한 것을 표현해 보려는 본질적인 결여가 지적 능력을 증폭시켜 창조력을 깨우는 동인이 된다앞서 창작 행위는 지성을 통해 법칙과 질서를 발견하고 이를 구체화하는 것으로서, 무질서를 질서로 전환시키는 과정이라 했다이는 무질서가 지성의 탐구를 이끌어내는 예술 창작의 필수 조건으로 기능한다는 것과 같은 얘기이다이러한 무질서와 불충분성 덕분에 예술가는 더 나은 언어를 찾고자 정신적인 퇴고(推敲, 수정보완)의 과정을 멈추지 않는다발레리는 지성을 강조하지만엄밀히 말해 그의 관심은 사고 자체가 아니라 사고의 메커니즘에 있었다지적 사유를 통해 무의 상태로부터 작품이라는 하나의 질서가 잉태되어 가는 과정이 중요한 것이다.

 



6. 부족함을 동력으로 

 

1) 멀리 높이만 중요하지 않다. 

 

에술행위에 있어서 멀리 높이 날으는 것만이 중요하지 않다.

때로는 점보비행기를 타고 대륙간 여행을 하기도 하지만 종이비행기를 장난처럼 날릴 수도 있다. 

큰 호화유람선 대신 나뭇잎배를 시냇물에 띄우기도 하는 즐거움도 중요하다. 

 

태양에 다다르고 싶은가?  No 타죽는다. 태양에 도달할 수 없다.

태양아래  높낮이는 큰 차이가 없다. 

예술수준의 높이는 태양아래 큰 의미가 없다

높게 날면 잘못하면 이카루스처럼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 

낮게 날더라도 자주 즐겁게 연주비행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2) 수준 장르를 따지지 않는다. 

클래식컬 뮤직이든 트롯이든 발라드이든 단원들이 각자 좋아하는 음악을 즐깁니다 

모든 음악은 존재가치가 있습니다. 

연주자도 자신의 연주취향이 있습니다. 자신의 연주 성향이 중요한 만큼 주위의 연주성향도 존중해야 합니다. 

상황에 맞게 대중의 성격에 맞게 그릇의 모양에 따라 물은 그 형태를 바꿉니다. 

같은 산사라도 야외에서는 목포의 눈물이 어울리고 실내에서 차를 마실 때는 대금산조의 진양조가 어울리겠지요.

같은 대금산조라도 자진모리(휘몰이)같이 급하게 몰아가는 음악이 차를 마실 때 안 맞는 것은 당연합니다 

 

3) 연주 못지않게 감상도 중요하다. 

제가 일꾼 역할을 즐거이 하는 것은 여러분의 음악을  감상할 기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연주하지 않아도 감상하기만 해도 행복합니다, .

어쩔 때는 연주하지 않고 듣는 것이 연주보다 좋을 때가 있습니다. 

나중에 더 나이가 들어 제가 연주를 할 수 없게 되면 우리 나주필하모니 단원들의 연주를 감상만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기를 원합니다. 

 

4) 상대음악에 대한 평가는 삼가야 합니다. 

음악계에서 상대음악을 함부로 평가하면 총으로 상대를 쏘아버리는 일도 있습니다. 유명한 일이지요.

어떤 재즈 연주자에게 평론가 음이 이탈되었다고 지적하자 바로 총을 꺼내어 쏴버린 것입니다. 작은꽃( Petite fleur )의 작곡가 시드니 베쳇의 이야기입니다.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하던 그는 이 일로 추방되었습니다.

자신의 음악이 소중한 만큼 남의 음악도 존중해야 합니다. 

싫으면 가만히 있으면 됩니다. 

 

5) 과도한 열정도 주의해야 합니다. 

창조와 호기심과 새로움에 대한 열정은 예술을 하는 사람의 숙명입니다.

그러나 과도한 열정은 창조의 혁신과 동시에 좌절이라는 부작용을 낳습니다. 

위대한 예술가들이 자신의 창조력이 고갈되었다고 느꼈을 때 자살충동을 느끼는 것은 매우 일반적인 일입니다.

우리는 위대한 예술가도 아니고 열정도 적당히 좌절도 조금. 이렇게 해야 합니다.

 

6) 과도한 슬픔도 과도하게 즐거운 것도 주의해야 합니다. 

우리는 전문 예술가가 아닌 만큼 일정한 윤리적 규범 속에서의 연주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공자의 음악철학은 과도한 슬픔도 과도한 즐거움도 경계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조선의 궁중음악이나 춤은 과도하지 않습니다 

요새 말로 하면 심심합니다. 춤도 어깨선을 넘지 않게 요란하지 않게 추었습니다. 

플라톤도 청소년들에게 함부로 음악을 들려주어서는 안된다고 하였습니다. 

음악이 미치는 영향을 고려한 것이지요. 

 

7) 자신의 옥에 묻은 티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결론입니다.

담대함입니다. 

용감하게 도전하고 부족함은 인정하고 다시 전진하기. 

자신의 음악이라는 옥에 묻는 먼지를 사랑하기. 

 

인간은 행복을 추구합니다. 

여기에는 3단계가 있습니다. 즐거움-몰입-사회적 의미.

 

즐거워하고 몰입하면 희열을 느낍니다.

그리고 사회적 공익을 위해 인류애적인 의미있는 행위를 할 때 개인적인 행복을 넘어 

보다 큰 행복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 나주필하모니는

개인적인 음악성 추구와 함께

사회적 의미를 갖는 음악적 행위를 향해

소박하고 조용하게 나아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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