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희 서법과 난 그림 - 김현권-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 는 詩書畵禪 합일의 결정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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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전: 김현권, 추사 김정희의 묵란화, 美術史學 제19권 1집,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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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는 난은 서법으로 그려야 하며, 인격과 인품의 수양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문자향과 서권기가 구비되어야 난초를 그릴 수 있다고 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그의 편지속에 이런 내용이 있다.
" 여기 종이를 많이 보내온 것을 보니 자못 실소를 금치 못하였다. 난을 치는데는 종이 서너장만 가지면 충분하다.
神氣가 서로 모이고 境遇(우연히 만나는 것)가 서로 융화되는 것은 글씨나 긂이 똑같이 그러하지만 난은 치는 데는 그것이 더욱 많이 작용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지금 약간의 종이에만 그려 보내고 보내온 종이를 다 쓰지 않으니 모름지기 그 묘리를 터득하는 것이 좋다 "
즉 김정희가 강조한 것은 서법으로 그릴 것, 서권기와 문자향을 갖출 것, 神氣와 境遇, 즉 자연스러운 창작 동기와 고양된 흥취를 강조하였다.
김정희가 추구한 최고의 마지막 경지는 詩書畵禪의 합일이었다. 이는 그의 不二禪蘭에 나타난다. 鄭燮의 역행법으로 쓴 다음의 제화문은 작품의 제작동기를 밝히고 있다.
“ 애초 달준이를 위해 아무렇게나 그렸으니 오직 한 번만 그릴 수 있는 것이지 두 번 다시 그릴 수 없는 것이다 仙客老人”
김정희가 ‘불이선란‘을 주려고 했던 사람은 다름아닌 시중을 들던 달준이라는 학동이었다. 그렇게 때문에 그가 애써 공들여 그릴 필요가 없었던 것으로 마음이 빈 상태였다. 그는 이런 상태였기 때문에 전혀 공백을 들이지 않고 일순간에 그려 나간 것이며 묵란의 기본 법식이나 그가 일관되게 추장해왔던 삼전법 등은 엄정하게 지키려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묻어 나올 뿐이었다. 김정희는 이러한 묵란화의 경지를 ’유마경‘ 전반에 흐르는 空과 無法이라는 의미와 상통하는 것으로 보았다. 역행으로 쓴 아래의 제화시는 그런 작품의 의미를 보다 함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난초 그림 그리지 않은 지 20년 만에 우연히 본성의 참모습을 쳐냈네.
문 닫고 찾으며 또 찾은 곳 이곳이 유마의 不二禪일세
만약 어떤 사람이 억지로 요구하며 구실을 삼는다면 또한 마땅히 유마거사의 무언으로 사양하리라 曼香“
김정희는 절필한 지 20년 만에 그려낸 난초의 참모습을 維摩經의 不二法에 연결하였다. 不二法은 말과 글로 진리를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불이선이 곧 그림 속 난초이기에 이 작품은 세상은 법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한 회화적 경지는 구천구백구십구분을 노력으로 성취하고 나머지 일분마저 이룬 뒤의 경지를 넘어서는 것으로 선가의 득도를 거친 이후에 펼쳐질 无涯(무애)의 경지인 셈이다. 김정희는 이렇게 畵禪일치를 실현하였으며, 또한 그 의미를 시로 함축하였으므로 詩畵일치를 꾀한 것이다.
추사의 부작난不作蘭’,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 는 소심란 素心蘭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주장
추사의 ‘소심란’ 감상하기
1973년 서울 출생. 서울 용산고등학교 (42회), 미국 미주리대학교 (University of Missouri-Columbia) 미술사학과 졸업 , 미국 시카고 예술대학원에서 미술사, 미술이론, 미술비평, 그리고 예술경영ㆍ정책을 공부하였다. 미국 하버드대학교 세클러박물관과 한국미술특별전을 기획ㆍ준비했었으며, 2003년 12월부터 2007년까지 시카고박물관 동양ㆍ고대미술부에서 제임스 큐노 관장님 이하 모든 선배, 동료들의 세심한 배려와 지도하에 연구ㆍ근무하였다.
BY : 이용수 | 2011.12.02 | 덧글수(0) | 트랙백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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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愚合唱 一] 소심란 素心蘭
추사 김정희, 『소심란素心蘭』 지본수묵. 55.0×31.1cm. 개인 소장
이 추사 김정희의 난 그림은 현 학계와 세간에 ‘부작난不作蘭’ 혹은 ‘불이선란不二禪蘭’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과연 이 난을 칭하는 이름으로 ‘부작난’이나 ‘불이선란’이 올바른 이름일까요? 아니, 이 그림은 ‘소심란素心蘭’이라 불려야 옳습니다. 그 이유를 알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소심란素心蘭은 제주 유배에서 풀리고 난 얼마 후, 추사 60대 중반에 그리신 작품으로 생각되는데, 화제 및 관서의 필획과 특히‘구경우제口竟又題’라는 관서가 이를 증명해 줍니다. 추사 자신이 아주 만족스럽게 생각하고 자찬한 명작입니다.
오세창吳世昌이 편집한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추사秋史’ 편을 자세히 살펴보면 추사의 고제인 우선 이상적이 그의 문집《은송당집恩誦堂集》에 이러한 시구를 남긴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은송당집恩誦堂集》(사진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중략)
知己平生存手墨素心蘭又歲寒松
평생 나를 알아주신 수묵이 있으니‘소심란’과‘세한송’이라.”
추사께서 돌아가시자 이상적이 눈물을 흘리며 지은 시로 진실된 사제 간의 관계를 보여 주어 현대에 시사하는 바도 크다 할 수 있습니다. 또 ‘소심란’의 의미를 알아 보면 ‘빈마음의 난’, ‘무념 난’ 등으로 그 풀이가 가능한 바 ‘우연히 그렸더니 천연의 본성이 드러났네’라는 화제와도 부합됨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吳小山見而豪奪可笑’라는 문구의 해석도 ‘오소산이 보고 좋아하며 빼앗으려 하니 가히 우습다’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이 난초를 소산 오규일이 빼앗아 갔다는 일화도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始爲達俊放筆只可有一不可有二. 仙客老人’이라 제題하신 것으로 보아 이 작품은 ‘달준達俊’에게 작품해 주었는데 이로써 ‘달준’이라는 사람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우선藕船 이상적李尙迪’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화제를 살펴 보겠습니다.
不作蘭畵二十年偶然寫出性中天
난초를 그리지 않은 것이 스무 해인데, 우연히 그렸더니 천연의 본성이
드러났네.
閉門覓覓尋尋處此是維摩不二禪
문을 닫고 찾고 또 찾은 곳, 이것이 유마거사의 선과 다르지 않네.
이 화제는 지금까지‘선’에 이르는 방법을 찾아 헤매었으나, ‘무념무상’의 마음 상태, 즉 ‘평상심’의 상태가‘선’에 이르는 길이라는 가르침을 주는 문구입니다. ‘선’에 이르는 길이 먼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 즉, ‘우리의 마음 속 상념을 버리는 것에 있다’라는 뜻이라 할 수 있습니다.
若有人强要爲口實又當以毗耶無言謝之. 曼香.
만일 강요하는 사람이 있다면 구실을 위하여 비야리성의 유마의 무언
의 사양으로 대답하겠다. 만향.
이는 함부로 난화를 치지 않은 추사의 일면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以草隷奇字之法爲之世人那得知那得好之也. 口竟又題.
초서와 예서의 기이함을 그 법으로 삼았으니 어찌 세인들이 만족하게 알고 만족하게 좋아하겠는가. 구경우제(구경이 또 제하다).
吳小山見而豪奪可笑
오소산이 보고 좋아하며 빼앗으려 하니 가히 우습다.
이상에서 알 수 있듯 이 추사 난 그림의 명칭이 ‘소심란素心蘭’임이
당시 조선과 중국에 인기 높았던 겸재 정선 그림🎨작품 하나당 중국에서는 100 – 130금까지?
*
의식의 혁명이 있어야 시각의 혁명이 일어난다. 그리고 선의 혁명이 일어난다.
** 추사 김정희 세한도
무려 14m 그림 한 장, 중국을 놀라게 한 이유 | KBS 20111110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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