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광사 수계식 2012.09.25.
송광사의 수계식(授戒式)을 담은 박군서 작가의 사진들은 단순한 기록사진을 넘어, 수행과 귀의(歸依)의 시간을 시각적으로 번역한 종교적 다큐멘터리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들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행렬의 침묵’입니다. 수도자들은 말이 없으나, 그 침묵 자체가 하나의 언어가 되어 화면 전체를 지배합니다. 카메라는 그들의 얼굴을 설명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걸어가는 뒷모습과 몸짓 속에서 수행의 시간을 읽어내게 합니다.
특히 수련을 마친 수도자들이 수계식 장소로 향하는 장면은 일종의 “현대의 순례도(巡禮圖)”처럼 보입니다. 개별 인물은 사라지고, 동일한 복색과 절제된 움직임 속에서 집단적 수행의 리듬이 형성됩니다. 이때 사진은 개인 초상의 차원을 넘어, 수행 공동체의 정신성을 포착하는 데 성공합니다. 인간 개체의 자아를 지우고 계율 앞에 자신을 낮추는 순간, 사진 속 인물들은 더 이상 ‘누구’가 아니라 수행 그 자체의 상징이 됩니다.
박군서 작가의 시선은 극적인 연출보다 자연광과 공간의 분위기를 중시합니다. 이는 불교미학의 핵심인 무위(無爲)와 공(空)의 감각과도 닿아 있습니다. 과장된 색채나 인위적 구도 대신, 흐린 하늘빛과 산사의 공기, 옅은 그림자들이 화면 안에서 수행자의 마음 상태를 은유합니다. 따라서 이 사진들은 보는 이에게 “장엄함”보다는 “숙연함”을 먼저 일으킵니다. 장엄이 외적 규모라면, 숙연은 내면의 떨림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시간성입니다. 수계식은 단순한 의례가 아니라, 이전의 삶에서 새로운 삶으로 건너가는 경계의 순간입니다. 사진 속 걸음들은 물리적 이동이면서 동시에 존재론적 이동입니다. 수행자는 한 걸음씩 세속으로부터 멀어지고, 계율과 수행의 세계 안으로 들어갑니다. 박군서 작가는 바로 그 “문턱의 시간”을 포착하고 있습니다.
미학적으로 보자면 이 사진들은 한국 산사문화의 전통적 풍경미와 인간 존재의 종교적 긴장을 동시에 담고 있습니다. 산사의 길, 회색빛 하늘, 줄지어 걷는 수행자들의 검박한 옷자락은 마치 수묵화의 농담(濃淡)처럼 절제되어 있습니다. 여기에는 화려한 감정의 분출이 아니라, 오래 침잠한 정신의 깊이가 존재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 작업은 단순한 불교 행사 기록을 넘어, “인간은 어떻게 자신을 비우며 다른 존재로 태어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철학적 사진예술에 가깝습니다.
박군서 작가의 사진은 결국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묻게 합니다.
“삶에서 진정으로 지켜야 할 계율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 질문 앞에서 잠시 걸음을 늦추게 됩니다.
▶이전작품
송광사 수계식: “인간은 어떻게 자신을 비우며 다른 존재로 태어나는가”- 박군서 철학적 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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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가보는 중앙아시아- 키르기스스탄의 천상화원(天上花原)과 파미르고원 | 박군서 서사문화사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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