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두고두고 기억나는 사람>
8. 대대장이 병사의 탄약을 들어줄 때
M60 기관총을 어깨에 걸치고 그 위에 탄약상자를 메고 천천히 산길을 올랐다. 함께 가는 동료들도 모두 탄약상자를 메고 있었다. 나는 기관총과 탄약상자를 메고 갔지만, 기관총보다 더 무거운 81mm 박격포의 포신이나 포판을 들고 가는 병사들도 있었다.
모두 말 한마디 없이 묵묵히 걸었다.
"탄약이 무겁겠구나. 내가 좀 들어줄까?"
고개를 들어 보니 대대장이었다. 탄약상자를 달라고 했다. 명령이니 순순히 넘겨주었다.
대대장은 그 탄약상자를 메고 몇백 미터를 걸어갔다. 그러고는 웃으며 말했다.
"야, 이거 정말 무겁네."
그러면서 다시 나에게 탄약상자를 건네주었다.
나는 키도 작고 체구도 왜소한 편이었다. 완전군장을 한 채 기관총을 메고, 거기에 수십 kg이나 되는 탄약상자까지 들고 가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마침내 내가 지켜야 할 벙커에 도착했다. 기관총을 설치하고 적이 나타나면 즉시 사격할 수 있도록 준비를 마쳤다.
당시 교육받은 내용에 따르면 전쟁이 발발하면 3일 안에 병력의 약 3분의 1이 소모된다고 했다. 그 기간 동안 후방에서 보충병력이 투입된다고 배웠다.
문득 내가 그 3분의 1 안에 포함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이 벙커가 내 무덤이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벙커 안에서 나는 대대장의 따뜻한 태도가 떠올렸다. 만일 전쟁이 일어나고 대대장이 위험에 처한다면, 나 역시 목숨을 걸고 그를 지켜야겠다고 생각했다. 벙커 안에서 스쳐 갔던 죽음의 상상만큼이나 강렬한 다짐이었다.
새벽 3시경, 비상이 해제되었다. 우리는 산에서 내려왔다.
도끼만행사건과 전쟁의 기억
이 이야기는 1976년의 '도끼만행사건', 일명 '미루나무 사건'과 관련되어 있다.
1976년 8월 18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미군과 한국군이 시야를 가리는 미루나무의 가지치기 작업을 하던 중 북한군이 이를 저지하면서 무력 충돌이 발생했다. 북한군은 현장에 있던 도끼와 곡괭이를 빼앗아 공격했고, 이 과정에서 미군 장교 두 명이 피살되고 여러 명이 부상을 입었다.
사건 직후 미국과 한국은 대규모 무력시위 성격의 '폴 버니언 작전(Operation Paul Bunyan)'을 실시했다. 수백 명의 병력과 전략폭격기, 전투기, 항공모함, 특수부대 등이 대기하는 가운데 문제의 미루나무를 단시간에 완전히 베어냈다. 북한은 끝내 무력 대응을 하지 못했고, 이후 유감을 표명했다.
도끼만행사건은 냉전 시기 한반도에서 발생한 가장 심각한 군사적 충돌 가운데 하나로 평가된다. 한반도에서 우발적 충돌이 얼마나 쉽게 전면적 군사위기로 확대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 대표적 사례이기도 하다.
걸핏하면 전쟁을 말하는 사람들은 과연 전쟁이 무엇인지 알고 있을까.
전쟁은 게임처럼 병력이 '소모되는' 일이 아니다. 현실에서는 사람이 죽어가는 것이다.
한국전쟁 발발 이후 70여 년이 지났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발전은 그동안 전쟁 대신 긴장된 평화가 유지되었기에 가능했다.
강대국은 전쟁을 해도 국토가 직접 전장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당사국은 다르다. 전쟁이 벌어진 땅에서는 발전을 논할 여지가 없다. 그곳은 피비린내 나는 생존과 죽음의 현장이 된다.

최루탄
제대를 일주일 앞두고 있었다.
중대장이 지휘소훈련(CPX)에 참여해 달라고 했다. 지휘소훈련은 지휘소의 설치와 운영을 가상 상황에서 병력은 동원하지 않고 지휘부만 수행하는 전술훈련이다. 물론 일부 병사들은 지원을 위해 참여한다.
명령이라기보다는 부탁에 가까웠다. 군에서는 제대를 일주일 정도 남겨둔 병사를 사실상 민간인처럼 대한다. 웬만하면 푹 쉬라고 한다. 그래서 중대장의 말에도 미안한 기색이 묻어 있었다.
훈련은 3일 동안 진행되었다.
마지막 날, 벙커 안에서 작전지도를 정리하고 있는데 훈련감독관이 다가오더니 작은 알루미늄 통의 안전장치를 툭 떼어냈다.
곧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최루탄이었다.
급히 방독면을 착용했지만 이미 최루가스를 들이마신 뒤였다. 방독면을 썼는데도 콧물이 흐르고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눈을 뜰 수조차 없었다.
나는 눈을 감은 채 벙커 벽을 더듬으며 간신히 밖으로 나왔다.
방독면을 벗고 소변을 보았다.
볼일을 마치고 돌아서려는데 옆에서도 누군가 소변을 보고 있었다.
대대장이었다.
그 역시 눈물과 콧물을 훔치며 소변을 보고 있었다.
나는 모른 척하고 얼른 자리를 피했다.
대대장이 민망해할 것 같아서였다.

< 이전자료>
1부 유년기의 힘 The Influence of Childhood
1. 잠의 힘- 생명의 관성: 잠드는 것, 어쩌면 꿈꾸는 것
https://blog.naver.com/wtcho2/224309655090
2. 건너 마을 할머니의 기도, 정화수와 삼신 할미 Samsin, the Goddess of Birth: 보호의 힘
https://blog.naver.com/wtcho2/224309773493
3. 아버지의 노래 : 정서의 힘
https://blog.naver.com/wtcho2/224310159337
4. 내 마음 속에 피는 어머니의 상사화 : 존재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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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유년기에 들은 언어의 지도: 인식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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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똥통에서 건진 분별의 힘
https://blog.naver.com/wtcho2/224313300162
7. 아쉬움과 그리움
https://blog.naver.com/wtcho2/224313934530
2부 두고두고 기억나는 사람
8. 대대장이 병사의 탄약을 들어줄 때
https://blog.naver.com/wtcho2/224314825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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