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소설

7. 아쉬움과 그리움 - 1부 유년기의 힘

ART GARDEN 2026. 6. 13. 08:27

1부 유년기의 힘

7. 아쉬움과 그리움

염소, 자두, 고라니, 소나기, 누에고추와 물레, 그 애

  • 염소

염소가 새끼를 낳으면 2마리를 낳았다. 염소는 한 마리를 낳는 것이 일반적인데 좋은 염소라고 소문이 났다.

염소를 가끔 논밭에 데리고 가 풀을 먹였다. 한 살 아래인 다섯 살 동생이 염소를 데리고 가겠다고 줄을 잡았다. 염소는 순순히 따라가지 않고 오히려 동생을 줄로 감았다. 동생은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정강이뼈에 금이 갔다. 부러진 것이다.

외갓집에서 이 염소를 키우겠다고 전갈이 왔다. 옆집 아저씨가 이 염소를 데리고 지리산 고개를 넘어 하루종일 걸어서 데려다주었다. 염소를 태워줄 트럭은 없었는가 보다.

나중에 외갓집에 가니 염소젖을 짜서 먹었다.

염소젖은 우유와 다른 매우 독특하고 깊은 맛이 있다.

 

- 자두, 고라니 그리고 여름 소나기

바로 세 살 위 초등학교 2학년 형과 함께 형 친구집에 갔다. 형 친구집은 자두과수원을 운영하였다. 집에서 나와 신작로를 한참 걷다가 작은 고개를 넘으면 형 친구집과 과수원이 들판에 내려다보였다.

형 친구집에서 자두를 먹고 자두 하나씩을 손에 쥐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고개길에서 고라니 한 마리가 휙 지나갔다. 처음 보는 고라니였다. 이러다가 호랑이가 나타나면 어떡하지 무서웠다.

고라니가 지나가고 맑은 하늘에서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내렸다. 여름비. 흠뻑 맞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오니 해가 쨍쨍 내리쬐었다.

꼬멩이 둘이 자두를 손에 들고 고라니에 놀라고 여름 소나기에 갑자기 어두워진 낮에 홀딱 젖어서 젖은 생쥐처럼 걸어갔다.

- 누에 고추, 물레

아버지를 따라 집 윗편에 있는 마을에 갔다. 마을의 한 집에 들어가니 누에고추에서 실을 자아내고 있었다. 끓고 있는 물에 누에고추를 넣고 누에고추의 끝에서 실을 끄집어내어 물레에 연결한다. 그리고 물레를 돌리면 누에고추가 물 속에서 빙빙 돌며 실을 자아내었다.

실을 모두 자아내고 나면 번데기가 남는다. 갈색이다. 아버지는 번데기를 집어 나에게 먹어보라고 한다. 조심스럽게 입에 넣어보니 고소하다.

아버지는 나에게 세상의 새로운 경험을 시킨다.

어제는 농지정리하는 불도저 위에 나를 올려놓았다. 새로 산 옷에 기름이 묻었다.

오늘은 누에고추에서 실을 내는 것을 보여주셨다.

나중에 존경하는 지도 선생님께서 나에게 말했다. "안 써서 그렇지 한 번 글을 쓰기 시작하면 누에고추에서 실이 연속해서 나오듯이 글을 쓰게 된다"는 말을 하셨는데 잘 이해할 수 있었다.

- 그 애: 나중에 우리 결혼할래

나는 6살 그애는 7살.

학교 운동장 한 켠에 포플라 나무 수십그루가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칠성무당벌레를 들여보고 있었다. 내가 그 애한테 말했다. "나중에 우리 결혼할래?" 그애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내가 40살이 넘어서 우연히 소식을 들으니 그 애가 아직 결혼을 안 하고 있다고 한다. 가슴이 찔렸다. 혹시 그 약속 때문에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것일까.

사라진 것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련한 그리움으로 다시 살아난다.

추억은 계절처럼 돌아오고, 그리움은 다시 유년으로 데려간다.

그 유년의 거울 앞에 오늘의 내가 비추어진다.

흐릿한 내일이 포플라 가로수길의 머언 소실점으로 이어진다.

성장한다. 새로운 것을 배운다.

그 깊은 곳에서는 어린 시절의 잠, 사랑, 노래, 풍경, 언어, 실패의 경험, 그리고 아쉬운 그리움이 산자락을 안고 펼쳐지는 안개처럼 깔려있다.

유년기는 지나가버린 시간이 아니다.

현재의 나를 떠받치고 있는 잠재의식 뿌리. 품고 평생을 살아간다.

유년기는 오래된 미래이다.

<이전 자료>

1부 유년기의 힘 The Influence of Childhood

1. 잠의 힘 : 몸의 힘

https://blog.naver.com/wtcho2/224309655090

 

2. 건너 마을 할머니의 기도, 삼신 할미 Samsin, the Goddess of Birth: 보호의 힘

https://blog.naver.com/wtcho2/224309773493

3. 아버지의 노래 : 정서의 힘

https://blog.naver.com/wtcho2/224310159337

4. 내 마음 속에 피는 어머니의 상사화 : 존재의 힘

https://blog.naver.com/wtcho2/224311237490

5. 유년기에 들은 언어의 지도: 인식의 힘

https://blog.naver.com/wtcho2/224312661892

6. 똥통에서 건진 분별의 힘

https://blog.naver.com/wtcho2/224313300162

7. 아쉬움과 그리움 https://blog.naver.com/wtcho2/224313934530

 

2부 두고두고 기억나는 사람

8. 대대장이 병사의 탄약을 들어줄 때

https://blog.naver.com/wtcho2/224314825286

9. 내 안에 남아있는 존경하는 선배 세 사람

https://blog.naver.com/wtcho2/224322525290

10. 60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두 분의 선생님

https://blog.naver.com/wtcho2/224322526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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