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원의 이름과 얼굴을 저 크고 높은 벽에 올린 나의 마음은>
이상호 화백과 이종배 작가의 협업으로 벽화가 완성을 바라보고 있다. 약 5일간의 작업이 5월 5일 어린이날 끝이 난다. 그리고 5월 7일 금요일 11시에 주차장에서 간단한 개막식을 한다. 뜻깊은 순간을 넘어 어쩌면 역사적 순간이 될 것이다. 많은 이들이 이곳을 찾아 사진을 찍었으면 좋겠고 벽화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궁금해했으면 좋겠다. 이번 오월에 추모식에 참석하는 이재명 대통령 일행들도 꼭 한번 오셨으면 하는 마음이다.
원화의 첫 선을 댈때부터 벽화의 스프레이 작업이 멈출때까지, 아니 이 프로젝트를 언급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잡고 있던 단 하나의 화두가 있었다. 왜 윤상원을 이렇게 크게 그려넣어야 하는 것인가? 바로 그것이었다. 물론 광주민중항쟁에서 이 분만큼 더 상징적인 인물도 없고 충분히 훌륭한 분인 것도 사실이지만 그보다 더 깊은 답이 필요했다. 그리고 민중화가 이상호 형이 먹선으로 초안을 그려냈을때 나는 이 화두를 놓았다.
"윤상원이 쥐고 있는 마이크는 대변인으로서 직접적 상징이다. 또한 항쟁의 마지막까지 불굴의 의지와 의리로 윤상원과 어깨걸고 싸웠지만 하층 출신이라고 학력이 별로고 힘이 없다고 지금까지도 주목받지 못하는 그런 시민군들을 한 분 한 분 기억해야 한다고 그가 지금 목소리 높여 말하고 있는 것이다. 등에 멘 총은 시민을 상대로 국민을 상대로 억압하는 모든 것에 언제든 다시 저항한다는 상징이다. 또한 무겁고 무거운 총은 돌보는 이 없은 무명열사들와 행불자들까지도 끝까지 업고 함께 가겠다는 전우의 맹세다. "
윤상원은 살아서도 무거운 짐을 지고 있었고 죽어서도 무거운 짐을 여전히 지고 있다. 가혹한 운명이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나는 윤상원을 영웅으로 만들기 위해서 이 프로젝트가 만들어 진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혹여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매우 조심해야 한다. 세상에 주목받지도 못하고 일찍 죽은 동생들의 맏형으로서의 역할을 그가 하게 하기 위해서는 산 사람들의 더 노력해야 한다. 수고스럽지만 윤열사와 관계된 곳들 즉, 윤상원기념사업회와 윤상원기념관과 들불열사기념사업회 등이 병고와 가난에 시달리는 없이 사는 동지들을 보살피는 일의 최선봉에 서야 하고 살아있든 죽었든 그들의 생애를 발굴하고 알리는 데에도 더 앞장서야 한다는 것이다. 기념사업회 하나 없이 세상에 가려진 그 분들을 짠하게 생각해야 하고 품어서 함께 걸어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그나마 가장 주목받고 사랑받고 대우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야 우리 모두와 우리 광주는 윤상원을 우리 모두의 윤상원으로 사랑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벽에 그려진 그가 우리 모두가 자랑스러워하는 그런 존재가 되기를 나는 미치도록 희망한다. 이미 자랑임에 틀림없지만.
* 지금도 윤상원 열사에 대하여 모르는 사람이 많아 짧게 그의 삶을 옮긴다.
윤상원 열사는 당시 전남 광산군 임곡면 천동마을에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전남대 정외과 졸업하고 주택은행에 취업하여 서울 봉천동점에서 근무했다. 6개월만에 다시 광주로 돌아와 플라스틱 공장에 위장취업 후 녹두서점 운영을 돕고 ‘들불야학’에서 맏형 노릇을 했다. 전국민주노동자연맹(전민노련)광주전남 대표로 일했다. 5.18에서 광주 시민군 대변인이자 투사회보의 주필로 활약했다. 5월 26일엔 최후 항쟁을 주도하였으며 다음날 27일 새벽 도청을 지키다 계엄군의 총을 맞고 사망했다. 시청 청소차에 실려 망월동에 묻혔다. 훗날 그와 노동열사 박기순과의 영혼 결혼식에서 나온 노래가 민중의 애국가인 ‘임을 위한 행진곡’이다.
<윤상원 벽화 개막식>
일시 : 2026년 5월 7일 목요일 오전 11시
장소 : 남도주차장 마당 (벽화 아래)
주소 : 광주 동구 문화전당로 23
누구든 편하게 오십시오. 환영합니다.


원래 이 벽에는 존 레논의 그래피티가 있었습니다.
그는 평화의 상징이었습니다.

Imagine - John Lennon(존 레논) easy ver. DRUM COVER
https://youtu.be/odJ_wNjMC88?list=RDodJ_wNjMC88
* 윤상원 열사 기념관의 건립과정이 다음 책에 소상하게 수록되어 있습니다.
50년 동안 흔들리며 배운 세상- 나의 소박한 운동사/ 김상윤
https://blog.naver.com/wtcho2/224125029519
20. 하성흡 작가의 윤상원 열사 일대기 그림
보성기업 윤태원 전무가 나를 찾아왔다.
윤태원 전무는 윤상원 열사의 친동생이다.
"형님, 하성흡 작가가 상원이 형 일대기를 그리겠다고 합니다."
하성흡은 80년 5월 당시 대동고 3학년이었고 집이 도청 근처여서 광주민중항쟁의 전 과정을 모두 지켜본 사람이었다.
그는 대학시절부터 민중미술을 그렸고, 전남대 사범대 벽에 거대한 광주민중항쟁도의 밑그림을 그렸던 작가다.
한때 노사모 전국 대표를 했는데, 그의 당호인 심우재(尋牛齋)로 알려졌던 사람이다.
나는 민형배 광산구청장을 만나 하성흡 작가의 뜻을 전하고, 하성흡 작가에게 '재료비'라도 지원하자고 제안했다.
민형배 청장은 기꺼이 내 제안대로 3천만 원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전남대 사범대 광주민중항쟁도 벽화에 새롭게 색을 입히는 작업을 할 때, 그 벽화의 밑그림을 그린 작가가 하성흡이라는 것을 알게 된 민형배 청장은 하성흡 작가에게 윤상원 일대기를 큰 그림으로 그려줄 것을 부탁했던 모양이다.
물론 지원금도 일억 원대에 가깝게 다시 책정했던 것 같다.
하성흡 작가는 100호 이상의 대작 12점으로 윤상원일대기를 완성했는데, 일대기를 완성하기 위해 밑그림을 엄청나게 그렸다고 한다.
한 200점 정도 되려나?
그리고 조각가 김광례는 윤상원의 흉상을 석고상으로 만들었다.
김광례의 윤상원 흉상과 하성흡 작가의 윤상원 일대기는 밑그림과 함께 아시아문화전당에서 전시를 했다.
당시 윤상원 기념사업회 이태복 이사장은 하성흡이 그린 윤상원 일대기를 서울 인천 수원 등지에서 순회 전시를 하기도 했다.
수원시장의 참여 아래 윤상원 일대기 수원 전시를 오픈한 날, 오픈식을 마친 후 집으로 돌아온 이태복 이사장은 휴식을 취하기 위해 목욕탕에 갔다고 한다.
그런데 이태복 이사장은 고문 후유증 때문이었겠지만 목욕탕에서 심정지로 돌연사하고 말았다.
참 안타까운 일이었다.
윤상원 일대기와 윤상원 흉상은 현재 윤상원 생가 마을에 세워진 윤상원기념관에 있다.
세계 어느 곳에서 한 인물의 일대기가 이처럼 거대한 회화 작품으로 남은 경우가 있는가?
광산구청은 윤상원 일대기를 그리면서 하성흡 작가가 그린 밑그림들을 어서 구입해 놓았으면 좋겠다.
이 에스키스는 나중에 한국회화사에 남을 작품들이 될 것인데, 흩어지기 전에 광산구청에서 모아놓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 밑그림들은 5월광주민중항쟁 전체를 관통하는 소중한 그림들이다.
이에 그치지 않고 민형배 청장은 윤상원을 소설화하고 싶어했다.
당시 영화화된 '도가니'의 작가 공지영 같은 소설가가 작업을 했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나타내기도 했다.
나는 대소설가인 황석영 선배가 윤상원을 잘 아는 사이니 황석영 선배가 윤상원 소설을 쓰는 것이 더 좋겠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러나 윤상원을 소설화하는 일은 결국 추진되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이에 그치지 않고 민형배 청장은 윤상원 생가에서 수완지구 공원까지를 '윤상원로'로 지정하겠다고도 했다.
거리가 정확히 5•18km는 아니나, 대충 5•18km라 하고 '윤상원로'로 지정하겠다는 것이었다.
그 이후 나는 진즉 윤상원로가 지정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5•18 택시운전사 한진수 선생으로부터 '윤상원로'라는 이정표를 볼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이미 국회의원이 된 민형배 의원에게 물으니 당시 무슨 일이 있어서 '윤상원로'를 지정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광산구청의 숙원사업 중 하나였던 '윤상원 기념관'이 개관하던 날, 개관식을 마친 자리에서 나는 민형배 의원과 박병규 청장에게 이제는 '윤상원로'를 지정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다시 도로명 지정을 촉구했다.
민형배 의원과 박병규 청장은 그야말로 신속하게 '윤상원 민주로'와 '윤상원 길'을 지정해 주었다.
5•7km의 '윤상원민주로'와 생가에서 도로변까지 329m의 '윤상원길'이 지정된 것이었다.
드디어 민주열사의 이름이 명예도로명으로 지정되는 쾌거가 광주에서 일어난 것이다.
역시 광주는 광주였다.
민형배 만세!
박병규 만세!
21. '천동 민주커뮤니티센터'(이후 윤상원기념관 명칭을 사용)
당시 민형배 광산구청장은 윤상원 생가 주변에 있는 밭을 구입하여 '천동 민주커뮤니티센터'(이후 윤상원기념관 명칭을 사용)를 세우려고 했다.
'윤상원 기념관'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면 국가 돈을 사용하기 어려워 우선 '천동민주커뮤니티센터'라고 했던 것 같다.
광산구청은 건축 설계를 주문했고 예산도 책정했다.
나 역시 기념관 건립을 돕기 위해 당시 광산구 국회의원이었던 김동철 권은희 의원을 만나 국비 3억 원 정도의 교부세를 확보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그들은 끝내 3억 원의 교부세를 확보해 주지는 못했다.
광산구가 기념관 부지는 확보했지만 예정된 부지로 들어가는 진입로가 너무 좁아서 그 땅들을 별도로 구입해야 했다.
그런데 마을 주민들이 진입로를 넓히기 위한 땅을 팔려고 하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진입로 때문에 '윤상원 기념관' 건립은 차일피일 미루어지고 있었다.
내 후임으로 윤상원기념사업회 이사장이 된 이태복 전 장관은 별도의 '윤상원기념관'을 건립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윤봉길기념사업회 업무도 맡고 있던 이태복 이사장은 200억 원 규모의 윤상원기념관을 건립하기 위해 당시 이용섭 광주시장을 만나 의견을 나누었다.
"광주시는 윤상원 열사를 윤봉길 의사 같은 분으로 생각하지 않는가요?
윤봉길 의사의 경우 국비로 윤봉길 기념관을 만들고 있습니다."
당시 이용섭 광주시장은 이태복 이사장에게 '만약 국비를 확보할 수 있다면 20억 원 정도의 광주 시비를 보조하겠다'고 약속하면서, 우선 광산구청이 건립하려는 기념관에 2억 원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나는 마음 속으로 이태복 이사장이 '윤상원기념관'을 건립하겠다는 안에 찬성하지는 않았다.
광주에 아직 '5•18기념관'이 세워지지도 않았는데, 국비 200억 원 규모의 '윤상원기념관'을 세우는 것은 그다지 환영받을 만한 일이 아니라고 나는 생각했다.
내가 처음 윤상원기념사업회를 만들 때도 일부 5•18관련자들이 찾아와 항의를 한 적이 있다.
"왜 윤상원만 영웅을 만들려고 합니까?"
많은 5•18 관련자들은 특정한 사람'만'을 기념하는 것을 그다지 환영하지 않았다.
그래서 광주시나 5•18기념재단에서도 특정한 개인을 기념하는 일은 일체 하지 않고 있었다.
이태복 이사장은 여러 통로를 통해 국비를 확보하려 했으나 여의치 않았다.
기념관 건립이 차일피일 미루어지고 있었는데, 윤상원 생가가 있는 천동 마을 주민들께서 큰 결단을 내려 주셨다.
200여 평의 대지와 그곳에 있는 마을회관을 윤상원기념관 건립을 위해 광산구에 기부채납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광산구청은 윤상원 기념관을 다시 설계했고, 2층 건물의 한쪽에 천동마을 마을회관 전용공간을 만들기로 했다.
마을회관 출입문도 별개로 만들었고, 2층으로 올라가는 엘레베이터도 별도로 설치했다.
광산구청은 9억 원의 예산을 건립 비용으로 책정했고, 광산구 민형배 의원은 국비 6억 원의 교부세를 확보했다.
나는 이용섭 시장 당시에 2억 원의 건립 예산을 지원하기로 한 사실을 상기시켜 광산구가 광주시에 예산 지원을 요청하도록 했다.
나는 당시 광주시장에 당선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강기정 시장에게 윤상원기념관 건립 예산을 지원해달라고 전화로 부탁했다.
"아, 추경예산인 모양이군요.
제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강기정 시장은 윤상원기념관 건립 비용으로 3억 원의 추경을 확보해 주었다.
광주시가 각 구 사업에 직접 지원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들었는데, 윤상원기념관 건립에 3억 원이나 지원하기로 결정한 것은 강기정 시장의 결단 덕분이었다.
이렇게 예산들을 확보했지만 나중에는 건축 비용이 아마 더 들어갔을 것이다.
이래저래 여러 사람들의 노력 덕분에 윤상원 기념관은 개관을 했고, 현재 지병문 이사장은 매년 전남대 강당에서 윤상원 음악제를 열고 있다.
올해도 5월 27일 저녁 7시에 전남대 민주마루에서 윤상원 음악제를 여는데, 1부에서는 임진택이 만든 창작판소리 '윤상원'을 임진택 명창이 직접 부르고, 가수 윤선애는 오월 노래를 부른다고 한다.
2부에서는 포레의 레퀴엠을 합창단원 30명이 끝까지 부른다고 한다.
윤상원기념사업회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성흡 작가의 윤상원 열사 일대기 그림>












위 그림들은 하성흡 작가가 그린 윤상원 일대기입니다.
500호 3점, 120호 9점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2025. 4. 17일 윤상원기념관이 개관했습니다.
시작한 지 8년만에 완성했으니 감개무량합니다.
광산구에서 12억, 민형배 의원이 가져온 교부세 6억, 광주시 지원금 3억 원 등으로, 거의 22억 원이 투여되었습니다
감개무량하다.
처음 윤상원기념관을 제안하고 지금까지 계속 지원을 아끼지 않은 민형배 의원에게 참으로 고맙다는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민형배 구청장을 이어 김삼호 박병규 구청장에게도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기념관 건립이 진입로 문제로 교착상태에 빠졌을 때, 마을분들이 마을회관과 부지를 광산구에 기부채납을 하여 물꼬를 터주셨는데, 너무나 고맙다는 말씀을 거듭 드린다.
시비를 지원해주신 강기정 시장도 참 고맙다.
일단 개관을 했으니, 윤상원기념관 이야기는 천천히 틈 나는대로 다시 올릴 기회가 많을 것이다.


오른쪽에서 두번째 필자 김상윤, 왼쪽에서 네번째 민형배


왼쪽부터 민형배, 김상윤



심산 김창숙 沁山 金昌淑 선생의 온고지신 溫故知新
https://blog.naver.com/wtcho2/223980910126
▶김상윤 소장품전 5·18 40주년 ‘민중畵, 민주花’전
은암미술관, 2020년
“시대와 호흡하는 작품… 울림 오래갔으면”
김상윤 ‘윤상원기념사업회’ 고문 소장품 전시
1981~2000년 민중미술작가 18명 작품 25점
송필용·한희원·하성흡 등 포함
http://kwangju.co.kr/article.php?aid=1586790000693563007
☎ 이메일 김상윤 sykim4910@hanmail.net
'미술'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설주雪舟 선생의 삼호당三乎堂 글씨 (0) | 2026.05.13 |
|---|---|
| 심산 김창숙 선생의 온고지신(溫故知新) (0) | 2026.05.13 |
| 마음챙기기 mindfulness 미술 프로그램 & 두 사람이 그린 그림 분석 : 60대 그림배우기 11차 (0) | 2026.05.04 |
| 무등산이여 (0) | 2026.05.04 |
| National Gallery of Art(워싱턴D.C.): 렘브란트, 터너, 고갱, 고호, 르누아르, 세란, 피사로, 드가, 모네, 젠틸레스키 (0) | 2026.05.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