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심산 김창숙 선생의 온고지신(溫故知新)

ART GARDEN 2026. 5. 13. 08:43

  • 김상윤: 볼수록 단아하면서도 운치가 있는 글씨로군요.
  • 조원탁: 心山 선생의 호 그대로 온고지신의 뜻과 심산선생의 호쾌하면서도 묵직한 삶의 걸음걸이를 배울 수 있도록 마음을 베풀어 주신 배려에 항시 감사하고 있습니다. 글자마다 고체의 아름다움이 스며 있습니다.
  • 그러고 보니 심산 김창숙(1879-1962)의 온고지신, 설주 송운회(1874-1965)의 매화도. 시대적 배경을 같이 하는 분들과 인연이 생깁니다. 

** 서예가 설주 선생이 88세에 그린 매화도 “글씨가 매화로 피어났네"

https://blog.naver.com/wtcho2/224277891550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출전은 중국 고전인 논어 「위정편(爲政篇)」입니다.

원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子曰: 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

자왈: 온고이지신, 가이위사의.

“옛것을 익히고(되새기고), 그것을 통해 새로운 것을 알면 남의 스승이 될 수 있다.”

여기서

  • 溫(온): 따뜻이 익히다, 되새기다
  • 故(고): 옛것, 지난 가르침
  • 知(지): 알다
  • 新(신): 새로운 깨달음을 의미합니다.

단순히 옛 지식을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경험과 고전을 현재의 삶 속에서 새롭게 해석하고 창조적으로 이해하는 태도를 말한다. 그래서 동아시아 학문과 예술에서는 전통을 바탕으로 새로운 경지를 여는 정신으로 자주 인용된다.

이 말은 특히 서예·문인화·전통예술 비평에서도 자주 쓰이며, “옛 법을 깊이 익혀야 새로운 경지가 열린다”는 의미로 확장되어 이해됩니다.

▶김창숙 (1879-1962)

성균관대학교 학장, 총장

1946 유도회총본부 위원장

비상국민회의 최고 민중지도자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

1926.12. 대한민국임시의정원 부의장

호: 벽옹(躄翁), 심산(心山)

 

5월 10일 유학자이자 독립운동가 金昌淑이 서울에서 별세했다(62주기). 향년 83. 김창숙의 호는 心山이다. 그러나 그보다 덜 알려진 또 다른 호 벽옹(躄翁)이야말로 그의 대쪽 같았던 삶을 서늘하게 상징하고 있다. '앉은뱅이 노인'이라는 뜻의 호 벽옹이 가리키듯, 심산은 장년기 이후를 앉은뱅이로 살았다. 그를 앉은뱅이로 만든 것은 일본 경찰의 모진 고문이었다.

심산이 일제시기를 살아낸 방식은 망명지인 중국에서의 독립운동과 국내에서의 옥살이였다. 그에게는 다른 가능성이 보이지 않았다. 심산은 재판정에서도 일제의 법 자체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변호사들의 변론을 거부했고, 재판장에게 경어를 사용하지도 않았고, 항소를 하지도 않았다. 그가 해방을 맞은 것도 일제의 감옥에서다. 그러나 해방이 옥살이의 끝은 아니었다. 경북 성주 출신의 이 비판적 유학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이승만은 해방된 조국에서도 몇 차례 심산을 감옥에 처넣었다.

심산의 公的 삶은 1905년의 제2차 한일협약(을사늑약) 뒤 을사오적(조약에 찬성한 학부대신 이완용, 군부대신 이근택, 내부대신 이지용, 외부대신 박제순, 농상공부대신 권중현)의 목을 벨 것을 국왕에게 상소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그는 그뒤 애국계몽운동, 비타협적 항일투쟁, 반독재 투쟁과 통일정부 수립 운동에 진력하며 말 그대로 志士的 삶을 살았다.

조선이라는 국가의 지배적 신분이었으면서도 망국 이후에 보신을 향한 내적 망명 상태로 잦아들어버린 儒林 일반의 야루(野陋)함은 오직 심산 한 사람의 헌걸찬 삶을 통해서 겨우 상쇄될 수 있었다. 심산은 조선조의 마지막 儒者이자, 민중성을 수혈해 경신을 모색하는 새로운 한국 儒學의 비조(鼻祖)였다고 할 수 있다.- 중정 김상윤 글

▶ 심산 김창숙의 삶

https://ko.wikipedia.org/wiki/%EA%B9%80%EC%B0%BD%EC%8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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