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소설

5. 유년기에 들은 언어의 지도: 인식의 힘

ART GARDEN 2026. 6. 11. 21:47

1부 유년기의 힘 The Influence of Childhood

 

유년기에 들은 언어의 지도 : 인식의 힘 - 제1부 유년기의 힘 

 

나룻배, 도라쿠, 제무시

1960년대는 버스가 없었다. 먼 길을 떠날 때는 나무를 싣고 다니는 도라꾸(트럭 Truck)를 세워서 요금을 주고 타고 다녔다. 어미니도 친정에 갈 때는 그렇게 트럭을 타고 다니셨다고 한다. 한 번에 가는 트럭이 있을 리 없다. 여러번 갈아타면서 어렵게 오갔다.

도라꾸라고 웃을 일도 아니다. 오늘날 사용하고 있는 오라이 빠꾸 모두 일본식 발음이다. All righ, Back. 아직도 사용하고 있다. 마후라(Muffler, 소음기) 도 마찬가지이다. 구태여 일본문화 청산이니 주장할 생각은 없다. 한글의 발음도 영어발음에는 한계가 있으니까. 쉬운 발음처럼 느껴지는 단어의 발음을 영어원어민들은 잘 알아먹지 못한다. 우리가 힘들여 공부한 영어발음도 한글발음의 원리에 따라 발음하기 때문에 영어 본래의 발음과는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어머니를 따라 섬진강을 건널 때가 있었다. 한쪽은 지리산, 양옆으로는 섬진강이 휘돌아나가는 외진 곳이다. 섬진강을 건너야 흔히 읍내 또는 외지로 나갈 수 있었다. 지금은 양옆으로 다리가 놓였다.

1960년대 초 땡볕을 쬐며 넓은 모래사장을 걸었다. 나루터에 이르러 나룻배를 탔다. 나룻배는 큰 줄로 연결하여 사공이 줄을 잡아당겨서 이동하였다. 가끔 노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한번은 나룻배로 강을 건너는데 제무시가 물길을 혜치고 나룻배 옆을 지나갔다. 매우 큰 도라꾸였다. 배와 제무시 사이로 자라 몇 마리가 물 속을 맴돌았다. 섬진강은 물이 맑아서 물 속의 물고기는 물론 강바닥의 자갈들도 투명하게 비쳤다. 물살을 헤치며 지나가는 제무시의 바퀴가 크기도 하였다. 나룻배로 타고 가는 곳을 차로 가니 말이다. 어린 마음에 저 트럭의 공기통에 물이 들어가지 않나 생각을 하였다.

나중에 알았다. 제무시가 미국 자동차회사 GMC(지엠 자동차회사)라는 것을. 제무시도 GMC의 일본식 발음이었다. 당시에는 제무시가 곧 도락쿠였다. 그도 그럴것이 6.25 전쟁 이후 불하받은 미군용 트럭이 우리나라 운송수단의 주력이었을 때였다. 신작로 큰 제무시가 먼지를 날리며 달려오면 자갈이 튀고 무서웠다. 멀리 비켜섰다.

나룻배

일제시대 교육을 받은 어머니는 급할 때면 숫자를 일본어로 말씀하셨다. 평소에는 한글로 말씀하시다가도 마음이 급하면 일본말이 튀어나왔다. 소학교 지금의 초등학교를 다닐 때 학교에서 일본어만을 쓰게 하였다고 한다. 한글을 쓰다 발각되면 벌을 받았다. 그래서 서로 경쟁이 벌어졌는데 친구를 뒤에서 밀쳐서 자기도 모르게 한글이 튀어나오면 신고를 해서 상을 받는 식으로 경쟁을 시켰다고 하셨다.

호주기

고구마를 쪄서 얇게 말린 것을 '빼껭이'라고 불렀다. 생고구마도 잘라서 말렸다. 알코올의 원료가 된다고 하였다. 고무마 찐것을 얇게 한 것과 감 껍질을 멍석에 널어 지붕 위에서 말렸다.

집 지붕 위에 올라가 누워서 하늘을 보면 전투기가 꽁지에서 구름을 남기고 하늘을 가로질렀다. 어머니는 이승만 대통령 부인인 프란체스카 여사가 호주에서 시집와서 호주댁이고 호주가 우리나라를 도와주었기 때문에 '호주기'라고 부른다고 설명해주셨다.

이승만 대통령(1875-1965)과 프란체스카 여사(Francesca Donner Rhee, 1900 1992)는 나이 차가 25살이다. 프란체스카 여사는 32살 때 이승만 대통령 나이 57살때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하였다. 프란체스카 여사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이승만을 만났다. 영어와 독일어에 능했고 이승만 대통령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어머니께서도 프란체스카 여사에 대해서 호감을 가지고 계셨다.

흥미로운 점은, 프란체스카 여사 자신도 한국인들이 자신을 "호주댁"이라고 부르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크게 개의치 않고 받아들였다고 전해진다. 한국전쟁과 전후 복구기에 많은 국민들은 그녀를 외국인이라기보다 한국의 어머니 같은 존재로 기억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프란체스카 여자는 오스트리아 사람이다. 1950-60년대에는 오스트리아(오지리,墺地利)와 오스트레일리아(호주) 혼동해서 사용하기 쉬웠다. 오스트리아 사람인 프란체스카 여사를 호주사람이라고 부른 것이었다. 그리고 미국에서 온 비행기를 호주기라고 부른 것이기도 했다. 공군장교로 근무했던 분의 이야기를 들으니 공군부대에서 1980년대에 F-33 전투기를 속칭 호주기 또는 쌕쌕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 일화는 1950년대 한국 사회의 국제 인식 수준을 보여주는 동시에, 외국에서 온 영부인을 친근하게 부르려 했던 한국인들의 정서를 엿볼 수 있다.

1960년대 초에도 전투비행기가 하늘을 나르는 일이 많았다. 그 때만 해도 나는 10년 전에 무시무시한 전쟁이 일어났는지 몰랐다. 비행기가 하늘에 비행기구름을 남기고 지나가면 '호주기가 날아간다' 생각하였다.

푸른 가을하늘을 멀리 쳐다보며 옆에 있는 고구마 뻬깽이나 말린 감껍질을 질겅질겅 씹어먹었다.

어머니와 함께 나룻배를 타던 기억, 나룻배에서 바라보던 물속의 자라의 움직임, 제무시 트럭이 물살을 가르는 모습, 하늘을 나르던 호주기의 흰 비행구름은 이제 60년을 넘어서도 생생하다. 그 때 인식에 눈을 뜨기 시작하였다.

그 때 찍은 내 사진을 보면 고개를 옆으로 비스듬히 하고 있다. 골똘히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초등학교때 별명이 '노랑영감'이었다. 평소에 무언가 골똘하게 생각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친구들이 지어준 별명이다.

지금도 내가 관심을 가진 분야에 대해서는 집중하지만 그외 분야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고 맹한 편이다. 제일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볼 때는 갑갑한 모양이다.

 


다시 읽어본다.

유년기의 나를 다른 사람을 보듯 객관화해본다

- 한 시대를 상징하는 풍경, 유년기의 감각

단순한 어린 시절 회상에 그치지 않는다.

한 개인의 기억을 통해 1950~60년대 농촌 사회의 생활상과 언어문화, 그리고 전쟁 이후 한국 사회의 모습을 복원한다.

나룻배와 섬진강, 제무시 트럭과 호주기 전투기는 모두 한 시대를 상징하는 풍경이자 유년기의 감각으로 남아 있다.

- 유년기의 경험과 역사와 사회를 바라보는 통찰

언어에 대한 기억

'도라꾸', '제무시', '호주기'와 같은 단어들은 오늘날 표준어가 아니지만 당시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는 자연스럽게 사용되었다. 일본어와 영어가 뒤섞인 말들은 식민지 시대와 전후 사회의 흔적이다. 어린아이는 그것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지만, 성장한 뒤에야 그 말들의 기원과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게 된다. 유년기의 경험이 훗날 역사와 사회를 바라보는 통찰로 이어지는 것이다.

-어머니의 일제시대 언어경험과 일제강점기의 상처

어머니의 이야기.

급하면 일본어 숫자가 튀어나오고, 학교에서 한국어 사용을 금지당했던 경험을 들려주는 장면은 일제강점기의 상처이다. 친구를 밀쳐 한국말을 하게 만든 뒤 신고하게 했다는 기억은 언어를 통해 민족 정체성을 억압했던 시대의 단면이다.

  • 생활사적 기록으로서 호주댁, 호주기

프란체스카 여사를 '호주댁'으로 기억하고, 전투기를 '호주기'라 불렀던 이야기는 당시 사람들의 인식 세계이다. 오스트리아와 오스트레일리아를 혼동했던 기억은 단순한 착오가 아니라 해외 정보가 부족했던 시대의 생활사적 기록이다. 그런 오해마저도 오늘날에는 역사 자료가 된다.

  • 생각하는 아이 '노랑영감'

'생각하는 아이'.

나룻배에서 자라를 바라보고,

물속을 가르는 제무시를 보며 공기통에 물이 들어가면 어쩌나 걱정하던 아이,

하늘의 비행운을 보며 상상의 세계를 펼치던 아이가 있었다.

친구들이 붙여준 '노랑영감'이라는 별명은 그런 골똘히 생각하는 기질을 친구들이 알아본 것이다.

세월이 흘러도 어린 시절의 관찰력과 호기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삶의 바탕이 되었다.

  • 유년기의 힘이 얼마나 오래 사람의 내면에 남아 있는가

「나룻배, 도라꾸, 제무시, 호주기, 호주댁」은 사라진 사물들을 추억하는 감상적인 글일 수 없다.

어린 시절의 경험이 감수성과 사고방식을 어떻게 형성하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다. 섬진강의 맑은 물과 나룻배, 먼지를 날리며 달리던 제무시, 가을 하늘을 가로지르던 호주기의 비행운은 모두 유년기의 힘이 얼마나 오래 사람의 내면에 남아 있는지를 말해주는 상징들이다. 어린 시절은 지나가지만, 그 시절이 남긴 시선과 기억은 평생을 함께한다.

  • 5편의 글을 다시 읽어보며 정리해보니 이렇게 요약된다. 유년기는 나에게 어떤 힘을 주었는가?

1. 잠의 힘 → 몸의 힘

2. 건너 마을 할머니의 기도 → 보호의 힘

3. 아버지의 노래 → 정서의 힘

4. 어머니의 상사화 → 존재의 힘

5. 유년기에 들은 언어→ 인식의 힘

6. 기억의 똥통(근간) → 윤리의 힘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이 글의 제목과 내용은 정신심리학자 안효자 교수의 comments에 기반하여 재구성되었습니다.

유년기의 힘에 대해 생각나는대로 정리한 글을 구조적으로 정리하여 주셨습니다. 감사드립니다.

 

 

▶ 장 폴 사르트르의 <말> The Words 《Les Mots》

 

저는 이 책을 고등학교때 읽었습니다. 큰 감흥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더군다나 사르트르는 여러가지 이유를 들어 노벨문학상 수상을 거부하였습니다. 공식적인 상을 받는 것을 평생 거부하였습니다. 자신의 주체적인 삶이 영향받는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였습니다.

 

이제 만년이 되어서 유년기의 힘이라는 주제로 여러 편의 글을 쓰다보니 사르트르 선생의 《Les Mots》의 길을 가고 있군요.

 

말 The Words 《Les Mots》는 사르트르의 어린 시절과 성장 과정을 회고한 자전적 작품입니다. 그는 이 책에서 어떻게 왜 글을 쓰는지를 분석합니다. 그리고 일종의 자기기만과 허영을 포함하고 있었음을 냉철하게 성찰합니다.

 

책은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 Lire (읽기, Reading)
  • 어린 시절 책을 탐독하며 상상의 세계에 빠져드는 과정
  1. Écrire (쓰기, Writing)
  • 작가가 되겠다는 열망과 문학적 자의식을 형성하는 과정

특히 《Les Mots》의 첫 문장은 매우 유명합니다.

J'ai commencé ma vie comme je la finirai sans doute : au milieu des livres.

영어로는

I began my life as I shall no doubt end it: in the midst of books."

한국어로는

나는 아마도 삶을 마칠 때와 마찬가지로, 책들에 둘러싸인 채 삶을 시작했다."

라고 옮길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단순한 자서전이 아니라, 한 작가가 자신의 형성과정을 해부하고 문학과 인간 존재를 성찰한 현대 프랑스 문학의 대표적 회고록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사르트르가 196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될 당시, 《Les Mots》는 그의 문학적 성취를 상징하는 중요한 작품 가운데 하나로 여겨졌습니다.

프란체스카 도너 리 Francesca Donner Rhee, 1900 1992 , 오스트리아

이승만 대통령과의 만남은 단순한 국제결혼을 넘어, 1930년대 역경에 처한 독립운동가와 그 이상을 함께 나눈 동반자의 역사적 인연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전 자료>

1부 유년기의 힘 The Influence of Childhood

1. 잠의 힘 : 몸의 힘

https://blog.naver.com/wtcho2/224309655090

 

2. 건너 마을 할머니의 기도, 삼신 할미 Samsin, the Goddess of Birth: 보호의 힘

https://blog.naver.com/wtcho2/224309773493

3. 아버지의 노래 : 정서의 힘

https://blog.naver.com/wtcho2/224310159337

4. 내 마음 속에 피는 어머니의 상사화 : 존재의 힘

https://blog.naver.com/wtcho2/224311237490

5. 유년기에 들은 언어의 지도: 인식의 힘

https://blog.naver.com/wtcho2/224312661892

6. 똥통에 빠지다 : 윤리의 힘

https://blog.naver.com/wtcho2/224313300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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