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어떻게 지내시는지
13. 우리는 어떤 음악을 추구할 것인가
1) 고전음악만이 보편적 음악인가?
며칠 전에 요새 서양고전음악을 즐겨듣는다는 70대 중반의 한 분과 간단한 토론을 하였습니다. 최근 3년동안에 서양의 고전음악은 거의 다 감상하였다고 합니다. 대단한 정열이지요.
그리고 얻은 결론이 "바하에서 베토벤에 이르는 음악이 보편적인 음악이고 그 이후의 현대음악은 알아듣지 못하겠더라. 스트라빈스키, 거쉰, 윤이상이나 이런 사람들 음악은 재미도 없고 알아듣지도 못하겠더라. 그것을 알아듣는 체 하면서 고상한 체 하는 게 싫다"고 하더군요.
스트라빈스키나 거쉰의 음악을 상당히 좋아하는 저로서는 할 말이 있었지만 말하지 않았습니다. 예술의 취향은 논쟁의 대상이 아닙니다. 스트라빈스키(Igor F. Stravinsky, 1872 - 1917)의 《봄의 제전, 1914년 발표》은 바하 음악만큼이나 많이 들었습니다. 거쉰( G. Gershwin, 1898-1937) 재즈와 클래식을 융합한 재즈 클래식음악의 세계를 열었습니다. Summer Time의 아리아가 그의 오페라 <포기와 베스, 1935>에 나옵니다. 저의 하모니카 연주의 기초라고 할만큼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취향이 다르면 그 취향을 존중해주어야 합니다.
2) 비틀즈나 엘비스 프레슬리도 한때는 무명이었다
그러면 비틀즈나 엘비스 프레슬리는 좋아하십니까? 물으니 매우 좋아한다고 합니다. 비틀즈는 처음 나왔을 때 혹평을 받았습니다. 우리나라 60-70년대에는 비틀즈 음악을 들으면 문제학생으로 낙인찍힐 정도로 시끄러운 로큰롤 음악에 대해서 저항과 혐오감이 컸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비틀즈를 20세기의 모차르트라고 합니다. 그것도 클래식 음악계의 거장인 번슈타인이 그렇게 표현합니다.
미국 20세기의 전설적인 가수 엘비스 프레슬리는 오랜 동안 무명생활을 했습니다. 가난한 어머니가 흑인들이 거주하는 멤피스로 이사하였습니다. 흑인들과 가까이 생활하며 흑인들의 재즈 소울 음악을 접하며 노래를 부를 때 흐릿하게 발성하고 흔들흔들 골반을 흔들며 노래하였습니다. 백인주류사회에서는 대중음악도 점잖게 불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골반을 흔들며 추니 외설적이라고 비난을 받았습니다. 엘비스 프레슬리를 일부 사람들은 '펠비스(골반, Pelvis) 플레슬리'라고 놀렸습니다. 지금은 스윗한 음색이고 율동적이라고 칭찬을 합니다.
미술에서도 지금은 한 점에 수 천억원하는 고호의 작품이나 고갱, 마네, 모네, 고갱, 로트렉, 세잔 등은 19세기 말 프랑스의 국전에서 낙선된 작품들을 모아 '인상파전'이라는 낙선전을 거친 그야말로 기존화풍의 반란자들이었습니다. 지금은 어엿한 20세기 미술의 주류가 된 것을 넘어 고전이 되었습니다.
최근의 이승윤이라는 대중가수도 '싱어게인'이라는 마지막 경선에 나가기 전 음악을 포기할 생각이었던 가수였습니다. 30대 초반 나이에 이르기까지 가난한 음악생활은 힘든 일이었습니다. 알고보면 그로서는 자기나름대로의 작품세계를 구축한 뮤지션이었습니다. 그런데 자기음악을 하다보니 대중성은 없었습니다. 행운의 여신이 그에게 손짓을 해서 이제는 고정팬 50,000명이 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운이 좋게 1등 1억 상금을 받고나서 하는 말이 자기처럼 어렵게 음악을 하고 있는 수많은 음악인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보낸다는 말이 절실하게 다가왔습니다.
3) 대중적으로 많이 듣는다고 반드시 좋은 음악은 아니다
지금 현재 대중적 지지나 후원이 없다고 그가 하고 있는 음악이 의미없는 것이 아닙니다. 음악의 유행과 힛트를 치는 배경에는 음악적 역량과 함께 사회적 기반의 지지가 필요합니다. 바하, 헨델, 하이든, 모차르트 등도 종교적 기반이나 왕족, 귀족의 재정적 후원이 있었습니다.
작곡하고 연주하는데 필요한 인력, 장소 등이 필요합니다. 결국 후원자들의 구미와 취향, 사회적 이해를 대변하는 음악이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바그너의 많은 음악들은 독일 히틀러 시대의 영웅적 행적을 미화하는 데 이용되었습니다. 안익태가 일제시대때 당시 일본의 괴뢰국가였던 만주국의 후원을 받으며 '만주 환상곡' 등의 음악들을 작곡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해방이후 스페인으로 가서 살게 된 배경이기도 합니다.
슈베르트의 음악은 가곡 중심의 소박한 음악들이었기에 웅장한 음악을 원하는 당시 지배계층의 적극적 후원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지인 친구들의 집을 전전하며 살았습니다. 생전에 자신이 작곡할 곡을 두드릴 피아노도 없었고, 자신의 음악집 하나 내지 못하고 30대 초에 쓸쓸히 삶을 마감하였습니다. 역대 3대 교향곡의 하나인 <미완성 교향곡>도 그가 죽은 지 37년 후에야 비로소 처음 연주되었을 정도였습니다. 그동안 다락방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가곡으로 인정되는 명태(양명문 작사, 변훈 작곡)도 1952년 처음 발표되었을 때 '저것도 음악이냐'고 연주장에서 야유가 쏟아졌습니다. '울밑에 선 봉선화야'와 같은 애상적이고 비탄적인 곡들이 당시 가곡의 큰 흐름이었습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선이 굵고 씩씩한 멜로디와 노래하는 중에 '크' 하며 쐬주 마시는 소리, '껄껄껄' 호탕하게 웃는 발성이 포함된 이 노래가 대중은 물론 전문가들의 눈에도 괴퍅하고 낯설게 보였습니다. 크게 낙심한 작곡자는 음악계를 떠났습니다. 그런데 10여년 후 다시 발표회장에서 연주된 명태에 대한 평가는 크게 달라졌습니다. 한국 가곡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곡이라고 환호를 받았습니다.
그 시대에 대중에게 많이 노출되는 음악은 지배계층의 후원이나 사회집단의 취향에 따라 결정됩니다. 그 취향도 변화됩니다. 바하(Bach)나 베토벤(Bethoven)의 음악을 좋아하는 것이 교양의 기본이라고 생각하고 그 외 음악은 미흡하다고 하는 사람도 어떤 계층적 이해를 대변하고 있는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좋아하는 음악은 계층별 다양한 기호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지 음악 자체의 질로 결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트롯을 좋아하는 정서도 있고 바하를 좋아하는 문화계층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음악은 음악 자체의 음으로만 좋고나쁨을 구분할 수 없습니다. 음악만 좋으면 되지 않느냐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음에는 역사가 있고 사회성과 윤리성이 담겨 있습니다. 사람의 언행을 보면 그 사람의 성격과 기질을 알 수 있습니다. 음악의 음도 마찬가지입니다.
김시습이 글을 써서 과거에서 급제를 하였습니다. 글이 명문이었습니다. 나중에 김시습이 알게 된 사실은 자기 글에서 언급하며 비판한 사실이 자기 직계할아버지를 공격한 내용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김시습이 절망하여 방랑시인이 되었다는 뒷이야기가 전해져오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글, 아름다운 음악이라고 그 역사와 의미를 모르고 찬송하는 것은 얇은 얼음이 언 겨울호수를 건너는 것과 같이 두렵고 무모한 일입니다.
4) 나주필하모니는 어떤 음악과 음악활동을 하는가? 느슨한 연대
좋아하는 음악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대중이나 남의 평가보다는 자신에게 충실한 음악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슈베르트(Schubert)나 명태 음악에서 보는 바와 같이 세계적인 수준의 음악들도 당대에 저평가와 악평을 받았는데 소박한 아마추어 음악을 하면서 높은 수준의 평판과 업적을 기대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것을 기대할 필요도 없습니다. "자신의 귀를 향하여 노래부르라"고 한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의 말은 자신의 삶과 생활과 자신이 하고 있는 예술행위 그 자체를 사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의미이겠습니다.
나주 필하모니에 모인 사람들은 잘난 것도 못난 것도 아닙니다. 음악을 하는 사람의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이 물이 아래로 고이듯이 모인 것입니다. 그래서 같이 음악을 향해 나가는 사람은 상호존중해야 합니다. 어떤 분들은 취향이 달라서 다른 웅덩이에 모인 것입니다. 누가 틀리고 잘난 것이 아니고 서로 다소 다른 음악성을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지금은 지향점이 다르지만 서로 변화가 되어 다시 모일 수도 있고, 모였던 분도 헤어질 수도 있습니다. 다른 곳에서 다른 그룹에서 음악을 하는 사람에 대한 태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의 길을 존중하고 격려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느슨한 연대라고 합니다. 서로 존경하면서 서로의 활동을 존중합니다.
완벽한 연주를 추구하지 않습니다. 부족한 것도 연주의 일부로 간주합니다.
비판보다는 격려를,
완성보다는 과정을,
음악 자체가 주는 즐거움과 위로와 함께 고상하고 품격있는 인간관계를 추구합니다.
모이고 헤어지고 하는 것에 대해서 크게 비중을 두지 않습니다.
반갑게 맞이하고 즐겁게 활동하고 기꺼이 보내주고 하는 가운데
자신의 음악에 대한 진전과 지역사회와 사회공동체의 예술활동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 자료 목록>
1부 유년기의 힘 The Influence of Childhood
1. 잠의 힘- 생명의 관성: 잠드는 것, 어쩌면 꿈꾸는 것
https://blog.naver.com/wtcho2/224309655090
2. 건너 마을 할머니의 기도, 정화수와 삼신 할미 Samsin, the Goddess of Birth: 보호의 힘
https://blog.naver.com/wtcho2/224309773493
3. 아버지의 노래 : 정서의 힘
https://blog.naver.com/wtcho2/224310159337
4. 내 마음 속에 피는 어머니의 상사화 : 존재의 힘
https://blog.naver.com/wtcho2/224311237490
5. 유년기에 들은 언어의 지도: 인식의 힘
https://blog.naver.com/wtcho2/224312661892
6. 똥통에 빠지다: 분별의 힘
https://blog.naver.com/wtcho2/224313300162
7. 아쉬움과 그리움
https://blog.naver.com/wtcho2/224313934530
2부 두고두고 기억나는 사람
8. 대대장이 병사의 탄약을 들어줄 때
https://blog.naver.com/wtcho2/224314825286
9. 내 안에 남아있는 존경하는 선배 세 사람
https://blog.naver.com/wtcho2/224322525290
10. 60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두 분의 선생님
https://blog.naver.com/wtcho2/224322526998
3부 어떻게 지내시는지
11. 음악활동과 예술정원산책
https://blog.naver.com/wtcho2/224323669434
12. 왜 기록하는가
https://blog.naver.com/wtcho2/224329431633
13. 우리는 어떤 음악을 추구할 것인가
https://blog.naver.com/wtcho2/224329435648
14. 예술: 부족함과 열정사이의 균형
https://blog.naver.com/wtcho2/224329437498
15. 뒷담화하는 사람, 뒷담화를 전하는 사람, 전해듣고 화내는 사람
https://blog.naver.com/wtcho2/224326809006
♬ Jazz Harmonica(An dir Musik, Red Wing, How Great Thou Art, 성자행진곡, Oh! Susan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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